코로나시대 대구시민의 안식처… 쓰레기매립장의 대변신

입력
2021.12.17 04:30
13면
<54> 대구수목원
생활쓰레기 410만 톤 묻힌 곳에
지하철공사장서 나온 흙 8m로 덮어
2,000종 45만본의 나무와 꽃 심어
코로나19 확산 후 탐방객 30% 이상 늘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7,000명을 넘긴 지난 12일, 대구 달서구 대곡동 대구수목원에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더욱 잦아졌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가 많아 다소 황량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시민들은 크게 구애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장 차림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젊은 여성, 유모차를 밀고 가는 부부, 운동복 차림의 50대, 배낭에 스틱까지 매단 60대 등산객, 해맑은 미소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유치원생까지. 오후가 되자 800여 대 규모의 주차장이 거의 다 찰 정도로 수목원은 붐볐다.

한 60대 여성은 "코로나 때문에 지난 2년은 정말 우울증이 올 것만 같았는데 나무와 대화를 하듯 걷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이 맑아지고, 마음이 편해진다"면서 "대구수목원은 걷기에도 좋지만, 무엇보다 볼 게 많아 지루하지 않다"고 말했다.

도시형 수목원… 코로나시대 시민 피난처 역할 톡톡

코로나19 이후 대구수목원이 시민들의 피난처로 각광받고 있다. 외진 산골의 다른 수목원과 달리 주거지와 인접한 도시형인 데다 수목원답게 다양한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밀집·밀접·밀폐 ‘3밀’을 피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대구수목원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수목원 입장객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연간 159만2,790명(2012년)에서 178만1,736명(2016년)으로 160만 명 선에서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입장객은 208만2,868명으로 전년(160만47명)보다 30%나 급증해, 개장 후 첫 200만 명 돌파 기록을 세웠다. 올해도 지난달까지 195만7,863명이 수목원을 찾았다. 연말까지 210만 명 돌파가 확실시된다. 사상 최다치 경신도 기정사실이다.

하루 종일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대구수목원은 대구시청 남서쪽 약 10㎞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 앞산 청룡산 비슬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능선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려 양쪽으로 갈라진 산줄기 사이 계곡 남북으로 길게 터를 잡았다.

입구에서 오른쪽은 흙길산책로, 왼쪽은 나무덱 길로 돼 있다. 중앙은 유모차나 전동휠체어도 다닐 수 있도록 포장돼 있다. 입구에서 반대편 끝까지 1.5㎞ 정도. 가장자리를 한 바퀴만 돌아도 1만 보가량 찍을 수 있다. 최병원 수목원관리사무소장은 “25개나 되는 정원 사이사이를 일부러 돌아돌아 걷는 분도 있다"며 "체력만 된다면 하루 종일 걸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목원에는 무려 실외 22개, 실내 3개까지 25개의 정원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활엽수원과 침엽수원, 습지원, 향토식물원, 철쭉원, 죽림원에 염료식물원과 방향식물원 등 특수 식물원까지 망라하고 있다. 특히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종교관련 식물원이 눈길을 끈다.

지난 2015년 9월에 조성된 종교관련 식물원에는 성서와 불경에 등장하는 열대성 식물이 주로 전시돼 있다. 목본 22종 100여 그루와 초본 8종 160여 포기가 있다. 사계절 내내 관람할 수 있다. 유성태 교육연구팀장은 “성경이나 불경에 나오는 식물 상당수는 원전이 아닌 한자로 된 것을 재번역하는 과정에 오역으로 실제와 다르게 표기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약성서 요한복음 등에 나오는 종려나무가 대표적이다. 원전에 나오는 것은 북아프리카 원산으로 학명이 피닉스 닥틸리페라 야자(phoenix dactylifera)인 대추야자이다. 우슬초는 마조람, 감람나무는 올리브나무의 오역이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인도보리수도 볼 수 있다. 한 스님이 인도의 마하보디사원에 자라고 있는 보리수나무의 가지를 가져와 삽목으로 키운 것을 기증했다. 하지만 이 인도보리수는 우리가 열매를 효소 등으로 먹는 보리수나무와 전혀 다른 종이다. 뽕나무과의 열대성 식물로, 온실에서만 자란다.

약령시 전통을 간직한 대구답게 약용식물원도 빼놓을 수 없다. 유 팀장은 “동의보감에 나오는 약용식물 520여 종 중에 국내에 자생하는 것은 220종 정도로 알려져 있다"며 "우리 수목원 약용식물원에 150종이나 있고 해마다 늘려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식물의 유래를 살피며 걷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덱로드 중간에 작은 숲속 카페도 하나 있다. 흙길 산책로 일부 구간(430m)에 조성한 맨발황톳길은 수목원의 새로운 ‘핫플’로 부상했다. 고운 황토를 깔아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한 구간이다. 맨발 걷기 열풍을 타고 시민들의 발길이 쇄도하고 있다. 수목원 측은 황톳길이 적절한 습기를 머금을 수 있도록 살수시설도 설치할 계획이다.





쓰레기매립장이 명품 수목원으로

대구수목원은 리사이클링을 넘어 업사이클링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쓰레기매립장 위에 조성한 국내 첫 수목원이다. 대구시는 1986년부터 5년간 이곳에 대구 전역에서 나온 연탄재와 음식물쓰레기 등 생활쓰레기 410만 톤을 묻었다. 당시 많이 쓰이던 8톤 덤프트럭으로 계산하면 무려 51만 대분이 넘는다. 이후 1990년대 초부터 시작한 대구도시철도 1호선 공사로 나온 사토 처리장으로 1차 재활용했다. 공사장에서 가까운 곳에 사토를 버릴 수 있고, 쓰레기장을 복토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이렇게 7~8m 두께로 흙을 덮었다. 중장비가 오가면서 단단하게 다져졌다.

1호선 지하굴착이 끝난 뒤 추가 활용방안을 고심하던 중 수목원 조성 아이디어가 나왔다. 반대 목소리도 컸다. 매립장이 안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목원을 조성하면 매립쓰레기에서 나오는 유해가스로 수목이 자랄 수 없다는 게 주된 반대 이유였다.

논란 끝에 1998년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2002년 5월 3일 개장했다. 그 사이 15개가 넘는 매립가스 배출공을 심었다. 일부 오염된 표토층은 흙을 교체했다. 조성 당시 현장감리를 맡았다는 최병원 소장은 “복토 두께가 7~8m이다. 평균 2m도 되지 않는 서울 난지도와 차원이 다르다. 뿌리가 깊고 높게 자라는 교목도 얼마든지 잘 자란다. 배출공 말고는 유해가스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반침하나 매립가스로 인한 식물 고사 우려는 기우였다. 유성태 팀장은 “개장 직후 검사한 결과 자동차 매연으로 도로변 가로수가 받는 영향보다 미미했다”며 “초기에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이 설치한 배출공을 지금은 지면과 비슷하게 잘랐다. 이젠 가스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4만6,503㎡로 처음 개장한 후 수차례 확장을 거쳐 지금은 당초 3배나 되는 78만1,279㎡로 커졌다. 2,000종 45만 본의 식물이 자란다. 유 팀장은 “한반도에 분포하는 식물이 약 4,700종이고, 대구권에는 1,700종 정도 있는데 우리 수목원에는 2,000종이나 된다”고 설명했다.

수목원에는 4동의 공중화장실과 2개의 쉼터, 22동의 파고라, 6개의 음용수대, 309개의 의자 등 충분한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어, 한번 찾은 탐방객을 다시 찾게 한다.

이곳은 시민의 힐링공간이면서 동시에 대구 전역에서 필요로 하는 수목과 화훼, 가을 전시회용 국화를 생산하고 있다. 공해에 강하고 열매가 아름다워 도로변 화단 등에 많이 심는 남천 등 30여 종 30만 그루의 수목을 생산한다. 봄꽃인 팬지 등 20여 종 80만 포기의 꽃묘종도 키운다.

해마다 가을에 열고 있는 국화전시회용으로 소국 대국 분재 등 1만5,000포기의 국화도 직접 키운다. 이 국화를 이용해 여는 국화전시회는 대구수목원 대표 콘텐츠로 부상했다. 전시회가 열리는 10월 말~11월 중순에 입장객만 수십만 명이 넘을 정도다.

수목원 본래 기능에도 충실

고민도 많다. 수목원은 도시공원이 아니다. 수목을 연구하고 유전자원을 보전하는 한편 생태교육 등이 주목적이다. 시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주거지와 인접한 도시형 수목원이다 보니 공원처럼 여긴다. 동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하절기에는 8시부터 개방이 원칙이지만 실제로는 6, 7시에 문을 열 수밖에 없다. 오전 5시도 되지 않아 문을 두드리는 주민들이 한둘이 아닌 탓이다.

최 소장은 “산림문화전시관과 교육관에 이어 수목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목재문화 및 목공예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목재문화체험장도 문을 열었다”며 “리사이클링의 상징으로서, 대구시민은 물론 전국에서 즐겨 찾는 명품 숲길로 가꾸겠다”고 피력했다.






정광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