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가 지난 겨울 붙잡은 건 '강원FC의 잔류'였다

입력
2021.12.12 19:18
시즌 앞두고 붙잡았던 '강원 심장' 한국영
부상 투혼 쐐기골로 승강PO 잔류 결정 지어
한 "은퇴 생각할 만큼 힘들었던 시즌"
"내년엔 이런 일 없도록 더 높은 곳으로"

축구선수 이영표는 2020년 12월 강원FC 대표이사로 축구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구단을 맡게 된 이 대표의 행보는 겨울 이적 시장의 화제였다. 초보 행정가답지 않은 솜씨로 어려울 것 같던 계약을 성사시켰고 지켜야 할 선수는 지켰다.

강원의 중원을 담당하던 한국영의 잔류도 이 대표의 작품 중 하나였다. 계약 만료를 앞둔 한국영은 당시 국내 주요 구단들은 물론 일본, 중동 등 10여 곳에서 '러브 콜'을 받았다. 더 높은 연봉을 주는 팀이나, 우승 가능성이 더 큰 팀으로 옮기는 게 합리적일지 몰랐다. 하지만 이 대표는 "빠른 시간 안에 컵 하나 들어올리자. 그러려면 네가 필요하다"고 설득했고 구단을 향한 이 대표의 진심에 한국영은 잔류를 선택했다.

시즌은 녹록지 않았다. 마가 끼인 듯 크고 작은 악재가 이어졌다. 시즌 초반부터 팀 에이스 선수들이 차 사고를 당했고 8월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한 달 가까이 강제 휴업에 들어갓다. 결국 K리그1 12개 팀 중 11위까지 떨어져 승강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고 1차전에서 패배했다. 2골 차 승리가 필요한 시즌 마지막 경기를 12일 치르게 됐다.



이날 '잔류 결승골'을 터뜨린 건 이 대표가 신뢰를 보내며 붙잡았던 '강원의 심장' 한국영이었다. 한국영은 팀이 2-1로 앞서가던 전반 30분, 2골 차를 만드는 세 번째 골을 터뜨렸다. 박스 바로 바깥쪽에서 서민우가 상대 수비수에 걸려 넘어진 상황이었다. 프리킥을 주장하며 숨을 고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깥에 있던 한국영은 지체없이 돌진해 공을 낚아챘다. 순간 그를 둘러싸는 수비 3명과의 몸싸움도 이겨내며 골문 오른쪽에 슛을 꽂아 넣었다.

부상의 고통을 이겨낸 골이었기에 더 값졌다. 한국영은 이번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다. 뇌진탕 후유증이 올해까지 이어졌다. 여름부터 말썽이던 발목 인대는 병원에서 "더는 주사로 버티면 안 된다"고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벼랑 끝에 선 강원의 마지막 경기를 포기할 순 없었다. 부상 투혼으로 경기를 치른 한국영은 결국 '잔류 결승골'을 넣었고 중원을 뛰어다니며 그 점수를 지켜냈다. 그는 후반 35분 발목에 무리가 온 듯 쓰러졌고 들것에 실려 나간 뒤 교체 아웃됐다. 잔류를 확정 지은 뒤 그라운드로 내려온 이 대표는 누구보다 먼저 한국영을 찾아 포옹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영은 "1년 동안 저 개인도 팀도 너무 힘들었다. 부상이 호전되지 않아 올해까지만 하고 은퇴를 해야하나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든 시즌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몸이 좋지 않아) 이번 시즌은 버티기자만 하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마지막에 조금이나마 팀에 보탬이 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강원은 이제 K리그2에 뛰어선 안 되는 팀이다. 그런 간절함이 있었다"며 "내년에는 본래 제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 제가 팀에 플러스가 될 수 있다면 팀은 분명 더 위로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강릉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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