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와 대림시기

입력
2021.12.12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요즘 절에 가면 스님 얼굴 보는 게 쉽지 않다. 음력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진 동안거에 들어가는 승려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기간 스님들은 거처에서 꼭꼭 문을 닫고 참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만 전념한다. 원래 인도에서 석가모니와 제자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설법을 했는데 우기엔 이동 시 땅속에서 나온 벌레들을 밟아 죽일 수도 있어 이를 피하려고 한 게 유래라고 한다. 스님들은 90일이 지나 동안거에서 해제될 때까지 새벽부터 일어나 정좌한 채 스스로를 돌아보며 엄격한 묵언수행을 실천한다. 매일 14시간 이상 정진해야 하고, 공양 식사는 하루 한 끼만 허용된다. 필요하지 않은데도 가지려고 애쓰거나 집착하고 있는 건 없는지도 살핀다. 마지막 날엔 참회 의식도 치른다.

□ 천주교와 기독교에선 이맘때를 대림시기, 강림절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기 전 4주간을 일컫는다. 단순히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성탄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와 기도를 한다. 연말이라 들뜨기 쉬운 때 잠시 멈춰 마음을 차분히 한 뒤 스스로를 돌아본다. 해묵은 감정은 털어내고 지인과 이웃에게 감사를 전할 선물도 챙긴다. 엉뚱한 곳에 스트레스를 푼 일은 없는지 반성하고 내면의 소리에도 귀 기울인다. 모든 이를 소중하게 대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것도 소홀하지 않는다. 항상 긍정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소 짓기 위해 노력한다.

□ 겨울엔 자연도 적막하다. 산속 동물들도 겨울잠에 들어간다. 나무들도 철학의 시간을 갖는다. 꽃과 잎을 모두 떨군 채 벌거벗은 실존과 마주한다. 찬바람이 불어 더 명징해진 밤하늘의 별들도 명상에 잠긴다.

□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로 세상이 시끄럽다. 위드 코로나가 아니라 도로 코로나다. 오랜만의 약속들이 미뤄지는 건 아쉽다. 하지만 종교를 떠나 나만의 동안거나 대림시기를 가질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차분하게 연말연시를 보내기엔 어쩌면 딱 어울리는 때다. 우리 조상들도 섣달엔 부뚜막이나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리고 초를 켠 뒤 온 가족의 건강을 빌며 송구영신하지 않았던가. 코로나 동안거 해제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