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새 정부 출범... 무거운 짐 짊어진 숄츠, 홀가분해진 메르켈

입력
2021.12.0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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숄츠 새 총리 '신호등 연정' 유지부터 시험대
코로나19 후폭풍·외교 줄타기 등 과제 산적
메르켈 前 총리 "몇 달간 아무 약속 안 할 것"
"조언자 역할... 향후 '구원투수' 복귀할 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문제를 떠안게 된 올라프 숄츠 새 독일 총리의 어깨가 무겁기만 하다. 내년 2월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관련,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터라 독일로선 이른바 ‘주요 2개국(G2·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도 해야 할 판이다. 이제 갓 출범한 새 정부를 이끌고 산적한 과제를 숄츠 신임 총리가 어떻게 해결해 갈지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반면 16년의 총리직을 마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매우 홀가분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그가 완전한 ‘자연인’의 생활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다.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게다가 아직도 충분히 젊다는 점에서 향후 ‘구원투수’로 다시 마운드에 오르거나 ‘코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시간) “숄츠가 독일 역사상 초유의 ‘정치 실험’에 성공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새 정부의 과제를 소개했다. 이날 공식 취임한 숄츠 신임 총리의 소속 정당인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 자민당이 꾸린 이번 연립정부, 이른바 ‘신호등 연정’은 독일 정치사에서 처음이다. 일반적으로 녹색당은 사민당과 노선 차이가 크지 않지만, 자민당은 구(舊)여당인 기독사회당(CDU)과 이념적 지향이 비슷하다는 평가다. 이질적 성향을 한데 묶어 융합하는 게 필수적이다.

큰 잡음 없이 연정을 이끈다고 해도 코로나19 후폭풍이 남아 있다. FT에 따르면, 현재 독일의 백신 접종률은 스페인과 덴마크 등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마비로 경제 전망이 어두워진 데다, 물가는 급상승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경기 침체는 정권 안정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숄츠 총리는 첫 출발부터 근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외교 문제도 만만치 않다. 최대 고민은 우크라이나다. 내년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예측 속에, 친(親)러시아 성향을 보여 온 사민당의 태도가 연정 유지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FT는 짚었다. 또 녹색당이 뚜렷한 반대 입장을 보이는 러시아-독일 간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에 대한 연정 내 의견 충돌도 과제다.

16년간 짊어졌던 국정 운영의 짐을 내려놓게 된 메르켈 전 총리의 거취도 관심거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세계가 아직 메르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을 수 있다”고 이날 전했다. 메르켈 전 총리 측은 퇴임 직전이었던 3일 “정치 생활에서 물러나며 몇 달 동안은 어떤 약속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비교적 젊은 나이(67세)를 고려하면, 언젠간 정치 일선에 복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메르켈 전 총리도 부정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그는 전날 CDU 소속 의원들과의 화상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조언하지는 않겠지만, 동료들의 자문에는 응하겠다”고 했다. 정치 활동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못 박진 않은 셈이다. 독일 언론이 입수한 문건을 보면, 메르켈 전 총리는 ‘퇴임 후 사무실에 전문 비서와 사무원, 사무실 관리자, 운전기사 등 직원 9명을 배치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전임자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사무실 직원 수(7명)에 비해 더 많다.

다만 독일 법률상 메르켈 전 총리가 총리직을 수행하며 얻은 인맥과 정보로 로비스트 활동을 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독일 의회는 2015년 고위 정치인이 퇴임 후 12∼18개월 동안엔 로비 활동을 할 수 없도록 법안을 통과시켰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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