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 20조원 지원금 나눠주는데 경비만 1조원… “쿠폰 인쇄비, 발송비 들어”

입력
2021.12.09 15:55
일본 특유의 아날로그행정 폐단...
재무장관 "과거 유사사례 비하면 과대한 것 아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피해 지원 차원에서 18세 이하에게 10만 엔(약 103만 원)씩 지원하는 일본 정부의 정책이 지급 방법을 놓고 혼선을 빚고 있다. 총액 약 20조 원 규모의 지원금을 현금 5만 엔, 쿠폰 5만 엔으로 나눠 지급하기로 하면서 행정경비만 1조 원이 넘게 드는 데 반발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재난지원금 지급 시 현금 대신 신용카드 캐시백 방식을 사용해 신속하게 지급하면서 소비 진작 효과도 노린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지자체가 직접 쿠폰을 인쇄해 발송하는 방식을 사용해 천문학적 경비가 소요되는 게 원인이다.

9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전날 중의원 본회의에서 10만 엔 전액을 현금으로 주는 방식을 야당이 건의하자 “쿠폰 지급을 원칙으로 검토하면 좋겠다”면서 “다만 지자체 실정에 따라 현금으로 대응하는 것도 가능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마쓰이 이치로 오사카 시장(일본유신회 대표)은 정부가 쿠폰 대신 현금을 지급할 수 있는 경우로 “재해나 감염 확대 등 내년 6월 말까지 쿠폰을 배부할 수 없는 경우”라는 조건을 제시했다며 “정부가 체면과 하찮은 자존심 때문에 쿠폰 배부를 고수한다”고 비판했다.

임시국회가 시작된 지난 6일 일본 정부가 제출한 보정 예산안(추가경정예산안)을 보면, 18세 이하에 10만 엔씩을 지급하기 위한 예산 총액은 1조9,473억 엔(약 20조937억 원)이다. 그런데 이 중 5만 엔을 쿠폰으로 지급하는 데 드는 사무(행정)비용이 무려 967억 엔(약 9,988억 원)에 달한다. 5만 엔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비용까지 합하면 전체 행정비용은 1,300억 엔(약 1조3,423억 원)에 육박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에 대응해 전 국민에게 10만 엔을 지급했지만 대부분 저축에 소요돼 소비 진작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고려해 이번엔 5만 엔을 쿠폰으로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지만, 엄청난 규모의 행정비용과 함께 지자체의 업무 부담마저 가중된 것이다.

지원금을 쿠폰으로 지급하더라도 전자적 방식을 이용하면 비용 부담이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이 지금 추진하는 쿠폰 지급은 종이 쿠폰을 발행해 이를 일일이 가정으로 우편 배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이 인쇄 시 위조 방지 기술도 적용해야 해 비싼 인쇄비가 든다. 물론 지자체가 인터넷 쇼핑에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 방식으로 지급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를 위해선 지자체마다 별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쿠폰 사용을 희망하는 점포를 조사해 반영하는 등 사무국 운영 경비도 필요하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장관은 경비가 논란이 되자 “과거의 유사 사업과 비교해도 과대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발언했는데, 이전에도 이런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행정이 이뤄져 왔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 됐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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