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역행하는 성폭력범죄 무고죄 공약

입력
2021.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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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살의 그녀는 난생처음 형사 법정에 섰다. 혐의는 무고죄. 강간 피해를 주장했다가 졸지에 무고 가해자가 됐다. 검찰이 강간 피해 사실을 허위로 판단한 근거는 모두 '피해자다움'과 관련돼 있다. 그녀는 강간을 당한 직후 남자의 '볼뽀뽀'를 거부하지 않았고, 또 누군가에게 즉시 도움을 청하지 않고 엉뚱하게 카톡으로 남자에게 유머 글을 보냈다. 이런 행동을 검찰은 강간 피해와 양립 불가능하다고 봤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남자를 신고했을 때부터 그녀는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나?", "왜 필사적으로 도망치지 않았나?", "어떻게 일상이 그렇게 평온할 수 있나?" 등의 질문에 답해야 했다. 결국 이런 의심이 모여 2년간의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피해자석이 아닌 피고인석에 앉게 됐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의심은 유독 성폭력 범죄에서 집요하다. 성범죄를 당했다고 말하는 순간 피해자는 전방위적 의심과 검열의 대상이 된다. 해자가 같은 조직에 속한 경우 심지어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최근 보도된 군대 내 성폭력 사건들에서 보듯이, 무고 의심과 2차 피해는 피해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원인이다. 성폭력이 강력범죄 중 신고율이 가장 낮고 오랫동안 '피해자 없는 범죄'로 불린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수사 및 재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논문 '너 같은 피해자를 본 적이 없다: 성폭력 피해자 무고죄 기소를 통해 본 수사과정의 비합리성과 피해자다움의 신화'는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수사기관의 무의식적 성별 편견이 어떻게 성범죄 피해자를 무고로 기소되게끔 하는지를 보여준다. 사실상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밝히는 전 과정에서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따가운 시선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에 무고죄는 성범죄 가해자가 피해자를 옥죄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필자가 맡았던 사건의 경우만 해도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가해자의 무고 역고소를 우려해 피해자가 고소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실제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무고로 처벌되는 비율은 매우 낮다. 2019년 7월 발표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피해자를 '무고'로 역고소한 경우는 2017년과 2018년 두 해 동안 824건인데, 그중 불기소 비율이 84%에 달한다. 또한 기소된 사건 중에서도 15.5%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 결국 성폭력 무고로 고소된 사례 중 유죄로 확인된 사례는 전체의 6.4%에 불과한 것이다.

얼마 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청년정책을 발표하면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신설 이유에 관해서는 성폭력 무고죄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를 들었다. 윤 후보가 말하는 성폭력 무고죄의 '특수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무고죄에 대한 처벌은 현행 형법상의 조항만으로도 위하효과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등을 보호하려는 취지의 특별법에 피해자를 극도로 위축시키는 무고죄를 별도 신설하겠다는 것은 성범죄 피해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미이다. 여성들의 입장에서 그건 곧 성평등과 민주주의를 한 세대 이전으로 퇴행시키는 것을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공약(公約)이 애초에 대선 국면에서 급조된 공약(空約), 즉 농담이길 바랄 뿐이다.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