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표가 수험생들에게 보내졌습니다. 2007학년도 이후 수능 성적표에는 원점수가 아닌 표준점수(상대점수)만 적혔는데요. 올해 수능은 처음 문·이과 통합시험으로 국어, 수학 영역의 표준점수 가늠이 어려워 '깜깜이 수능'으로도 불렸습니다. 선택 과목에 따라 같은 원점수를 받고도 표준점수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인데, '전국 수험생'을 대상으로 표준점수 계산을 올해 처음 해보기 때문이죠. 이전에는 문과, 이과, 때론 예체능까지 계열별로 상대평가해 표준점수를 냈습니다.
11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22학년도 수능은 국·영·수 모두 예년보다 어려운 '불수능'이었습니다. 국어 만점자는 전국에 딱 28명뿐이었고, 절대평가인 영어 1등급(90점) 비율도 전년과 비교해 반토막이 났죠. 수학 만점자가 받는 표준점수 최고점은 지난해보다 10점 높았습니다. 표준점수 최고점은 시험이 어려울수록 높습니다.
대학입학 원서를 쓸 때 학부모들이 겪는 애로 사항은 크게 두 가집니다. 본인 유년 시절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대학별 위상과 주택 청약보다 복잡한 대입제도죠.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이제 지방 국공립대의 웬만한 학과 정시 합격선은 수도권 4년제보다 낮습니다. 또한 본인 유년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학입학률로 실질경쟁률은 훨씬 높아졌죠. 입시전문가들이 "20년 전 한양대 입학 성적인 학생이 올해 입시를 봤다면 건·동·숙(건국대, 동국대, 숙명여대) 턱걸이도 어려울 것"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학부모들이 본격적으로 머리에 쥐가 나면서 인지부조화를 겪는 것은 대학별 입학전형을 '해석할 때'입니다. 너무 복잡하고 심지어 매년 바뀌어서 '용한' 입시 컨설턴트를 알아보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현행 대학입학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수시와 정시 전형으로 나뉩니다. 수시는 다시 ①학생부 교과 ②학생부 종합(학종) ③수시논술 ④특기자 전형 등으로 세분화됩니다. 대부분 수시 전형은 수능 최저점(영역별 등급 합)을 맞추면 응시 기회가 주어지거나, 최저점을 보지 않고 바로 응시 기회를 줍니다. 언론 기사에서 흔히 보는 '등급별 커트라인'은 수시에 쓰는 말이죠. 정시는 대개 수능 성적을 100% 반영합니다.
수시 전형 중 가장 많이 뽑는 ①교과 전형(2022학년도 기준 전체 모집 정원의 42.9%)은 말 그대로 교과 성적 즉, 중간·기말고사 내신을 봅니다. 모집 정원의 22.9%를 뽑는 ②학종은 교과 성적과 함께 봉사활동, 동아리 및 학교생활, 자기소개서, 면접 등을 포함한 비교과 성적을 따집니다. 합격 확률이 로또 같다는 ③수시논술(3.2%)은 수능 전후 대학별 논술고사를 통해 선발합니다.
하지만 상위 16개 대학(정시 배치표 학과별 커트라인 평균기준)으로 범위를 좁히면 선발 비중이 달라집니다. 이들 대학의 교과전형은 수시모집 정원의 10% 미만이고 계속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나마 대부분은 앞서 말한 '수능 최저 점수 요건'이 있어 반수능 전형에 가깝습니다. 지역 간, 학교 간 학력 격차는 누가 봐도 분명히 있는데 이들 대학은 내신 성적 좋다는 이유로 학생을 뽑을 의지가 적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전형은 학생 모집이 절박한 중하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선발 비율이 늘어납니다. 반대로 논술 전형은 전체 선발 비중이 줄지만, 서울대·고려대를 뺀 상위 14개 대학은 여전히 수시 선발 비중의 20% 안팎을 논술로 뽑아요. 심지어 수능 최저점을 보지 않는 대학도 많아 경쟁률이 수백대 1에 달하죠.
상위 대학 수시 전형의 '메인스트림'은 단연 학종입니다. 가장 이상적 입시제도라는 찬사를 듣고 도입됐지만,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을 받으면서 논문 저술 등 외부활동 기록 활용이 불가능해지고, 대신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최소한의 증빙서류를 평가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고교등급제' 논란에 따라 2021학년도부터 학교 이름을 블라인드 처리해서 볼 수 없지만, 일부 심화선택 과목은 특목고에서만 개설할 수 있어 실효성은 여전히 논란입니다. 당락의 기준이 모호하고, 평가에 교과공부 외 다른 요소가 끼어들 수 있어 불공정 시비가 끊이지 않습니다. 일부 대학들은 '스펙'만으로는 학생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워 본고사 수준의 면접을 보기도 해요.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면 또 한번 입시 판도가 출렁이겠죠.
학종의 모집 정원은 전국 대학 정원의 30%를 넘긴 적이 없지만, 상위 16개 대학의 경우 2018학년도 이후 총 정원의 40% 이상을 학종으로 뽑았습니다. 수시 정원 기준으로는 60% 이상이죠. 목표를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좁히면 학종의 비중은 더 커집니다. 2022학년도 이들 대학 학종 비율은 전체 모집 정원의 44.6%, 수시 정원 기준 71.6%이지만 사실상 학종에 가까운 연고대의 '명목상 교과전형'을 더하면 총 정원의 57.8%, 수시 전형의 92.7%가 학종으로 선발됩니다.
중요한 건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지원하더라도 수시 전형에 따라 자소서와 내신, 면접과 수능 성적의 반영 비율, 방식이 제각각이란 겁니다. 이 때문에 입시전문가들은 비슷한 내신, 같은 수능 성적으로도 응시 전략에 따라 붙고 떨어지고 운명이 달라진다고 입을 모읍니다.
수능 점수로만 당락을 결정하는 정시는 간단한 제도일까요? 이 역시 영역별 점수 반영 비율, 방식이 대학마다 제각각입니다. 대개 상대평가인 국어, 수학, 탐구 영역을 대학별·전공별로 가중치를 달리 반영하고, 절대평가인 영어 영역을 가산, 감산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 반영 비율은 서강대가 43.3%로 가장 높고 서울대, 성균관대, 중앙대, 한양대(상경계열) 등이 40%, 이화여대(인문)가 25%를 반영합니다. 다른 과목보다 수학을 잘한다면 단연 서강대 정시를 노리는 게 유리하겠죠.
한데 영어의 가산, 감산 비율과 방식에 따라 영역별 실질 반영 비율은 또 달라집니다. 서강대의 경우 영어 1등급과 9등급 점수 차가 8점에 불과한데, '국수탐 1,000점+영어 100점'을 더해 총 점수를 내기 때문에 수학의 실질 반영률은 더 올라갑니다. 성균관대는 영어의 '등급 간' 감점 점수도 제각각 다릅니다. 그러니 진짜 대학의 수능 영역별 반영률은 영어 산정 방식을 반영해 '각자 다시' 계산해 봐야 하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최상위 대학·학과의 경우 지원자 중 수능 만점자가 나오는 경우를 대비해 '변환 표준점수'라는 걸 또 계산합니다. 만점을 받고도 일부 영역은 선택 과목에 따라 표준 점수 차이가 크게는 10점 가까이 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을 감안해 표준 점수를 다시 상대 평가한 변환 표준점수를 성적 기준으로 삼기도, 안 삼기도 하는데 심지어 같은 대학에서도 변화 표준점수 적용 여부가 해마다 다릅니다. 예컨대 서울대는 지난해 정시모집에서 탐구영역 성적을 변환 표준점수로 적용했지만, 올해는 표준점수로 적용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올해 깜깜이 입시가 된 배경을 다시 알아보죠. 수시에 합격하면 정시 지원 자체가 불가능한 룰에서, 문·이과 통합으로 국어·수학 표준점수 가늠이 어려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같은 점수를 받고도 선택 과목에 따라 표준 점수가 달라지는데 심지어 똑같은 선택 과목, 똑같은 원점수에도 공통과목 득점 비율에 따라 표준점수가 또 달라집니다. 똑같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해 수학 80점을 맞아도 공통과목에서 55점을 맞았느냐, 50점을 맞았느냐에 따라 성적표 점수가 다르다는 말이죠. 수능 대박을 맞은 학생이 예년처럼 수시전형 기회를 날려 버리기에는 모험이 필요했다는 소립니다.
이쯤 되면 대입 여부는 운이 좌우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서울 대치동에서 20년 넘게 논술강사, 입시 컨설턴트로 일했던 전직 학원장은 단언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 입시기관이라고 눈에 확 띌 만한 데이터를 갖고 있진 않습니다. 유명 입시연구소 소장들의 입시 전략을 보면 정보 출처는 대개 4년제 대학의 모임단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평가연구원이 제공하는 입시자료, 보도자료입니다. 사실 대교협은 십수년 동안 모은 모든 대학의 합격, 불합격 데이터를 활용할 프로그램을 전국 고등학교에 제공했습니다. 관건은 '통계 해석력'인데요.
A대학 특정 전형 합격자의 교과 내신이 1.5~4.5등급까지 분포돼 있고, 평균 내신은 1.9등급, 표준편차는 0.3이라면, 3등급 이상 합격자는 특목고나 전국단위 자사고 1, 2명밖에 없다고 보고, 일반고 3, 4등급 학생에게는 권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용하다는' 입시학원, 십수년 진학지도를 담당한 교사 중 일부는 저 데이터로 지역별, 고교별 내신 등급 차이도 가늠해봅니다.
재학생에 관한 한 입시 '로 데이터(raw data·미가공 자료)'는 학교가 훨씬 많이 갖고 있습니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 등 지역별 교사 단체들도 해당 학교 학생들의 성적을 무기명으로 취합·공유해 전국 고교 재학생의 모의고사, 전형별 합·불(합격 불합격)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진학사 등 원서접수 기관은 더 정교한 전형별 합·불 데이터를 쌓을 수 있습니다.
대형 입시학원들은 수험생들에게 수능 가채점(원점수로 등급별 커트라인 가늠) 프로그램을 무료로 선보이며 실제 수능 성적표 배부 전까지 등급별 커트라인, 주요 대학 정시 합격선을 가늠할 빅데이터를 쌓습니다. 이 정보를 학원가가 모아, '수천 개 대입 전형'에 모두 적용해 ①고교별 ②내신별 ③비교과 스펙별 ④수능 점수별 합격 가능선을 분석합니다. 앞서 말한 '진짜 대학의 수시·수능 영역별 반영율, 방식'을 감안해 '각자 다시' 계산하는 걸 일부 입시컨설팅 업체들은 학교별로 다 해본다는 거죠. 일부가요.
아무리 자식 입시가 중요해도 학부모들이 생업을 제쳐두고 수천 개 대입 전형을 일일이 계산할 수는 없죠. 학부모들이 입시 컨설턴트를 찾는 이윱니다. 교육부가 매년 발표하는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입시 컨설팅을 받는 학생 비율은 2018년 3.6%에서 2020년 2.4%로 준 반면 컨설팅에 지불한 총액은 616억 원에서 774억 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소수를 대상으로 고액 컨설팅이 이뤄지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죠.
지역별 비용은 천차만별입니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의 '진학상담·지도' 과목 교습비 조정 기준은 1분당 5,000원, 전주교육지원청은 1분당 400원, 군포의왕교육지원청은 1분당 300원, 강원 인제교육지원청은 1분당 100원입니다. 강남 입시학원들의 정시 컨설팅 비용은 대개 1회 90분 기준 45만 원 선이라는 소립니다.
물론 교육청에 신고하지 않은 학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입시컨설팅 비용을 받을 가능성도 있죠. 수천 개 대입전형 시뮬레이션을 직접 만들기보다는 컨설턴트 상담을 받는 게 합리적일 듯도 하네요. 새 대입전형에 맞춰 매년 시뮬레이션을 업데이트 하는 곳을 찾는다면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요. 요즘 대학 가기가 아버님 수험생 시절 같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되지도 않을 조언은 일찌감치 접으세요. 입시제도만 찬찬히 훑어 봐도 요즘 학생들 수준이 '하향평준화됐다'는 근거 없는 소리는 감히 할 수 없을 겁니다. 쌓아야 할 스펙 종류가 얼마나 많은데요. 수능 선택과목 '선택'하기 전에 뭐가 유리한지 과목별 교과서는 다 읽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몇 년째 요즘 학생들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2018년 한국 학생의 읽기 영역 점수는 37개 회원국 중 5위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2012년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서 35~44세 한국인 평균 문해력은 조사 대상국 평균보다 낮았고, 45~54세는 하위권, 55~65세는 최하위권이었습니다. 10년 전 자료임을 감안해도, 중장년 문해력은 OECD 평균보다 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