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미대 교수 성비위 인정… "학교가 무마 종용" 주장도

입력
2021.12.09 11:00
학교 성폭력대책위, 한달 조사 거쳐 인사위에 회부
조사 과정서 피해 학생들에 부적절 발언 정황도
공동행동 "가해 교수 연내 파면 안 하면 법적대응"

홍익대가 미대 A교수의 성비위 사실을 확인하고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A교수는 학생들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고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하지만 일부 교수들이 A교수 의혹 조사 과정에서 피해 학생들을 상대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돼 논란은 오히려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 학교 미대 학생회 등이 참여한 '홍익대 미대 인권유린 A교수 파면을 위한 공동행동'은 9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달 2일 홍익대가 성폭력등대책위원회를 열고 'A교수의 성비위가 인정돼 인사위원회에 회부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홍익대, 자체조사 끝 인사위 회부

A교수 사건은 올해 9월 공동행동의 폭로로 공론화됐다. 공동행동은 A교수가 2018년부터 올해까지 학생 10여 명에게 '성관계 날짜를 잡자' '너는 작업 안 했으면 N번방으로 돈 많이 벌었을 것 같다' '패주고 싶다' 등의 성희롱성 발언과 폭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A교수는 그간 사실관계를 전면 부인했고 일부 학생들이 A교수를 옹호하면서 진실 공방이 빚어지기도 했다.

홍익대는 그달 27일 성평등상담센터에 접수된 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성폭력대책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A교수 관련 안건을 인사위에 올렸다. 하지만 인사위의 요구에 따라 성폭력등대책위원회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지난달 2일부터 한 달가량 조사를 진행하고 A교수의 비위 사실을 인정했다.

공동행동은 "대학 당국이 성비위 사실을 인정한 것은 진전이지만, 피해 학생들이 용기를 낸 지 3개월이 지나도록 사건이 징계 권한이 없는 인사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학교 홍보 중인데 맥 빠져" 문제 발언도

공동행동은 보직 교수를 포함한 학교 인사들이 사건 조사 과정에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남겼다고 주장하며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표창우 부총장은 조사 개시 사흘 뒤 열린 학교·학생대표자협의회에서 "(A교수의 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정의를 세우겠다고 뛰어드는 것은 정의를 거꾸로 돌릴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음선필 기획처장은 "수시를 앞두고 몇 천만 원씩 들여 학교를 홍보하고 있는데, 이렇게 터뜨리니 맥이 쭉 빠진다" "이슈 메이킹엔 성공했을지 몰라도 문제 해결엔 지혜로웠을지 잘 판단해보자"고 말했다.

학교 측 인사들은 조사위원회 소속으로 피해 학생을 만난 자리에서도 2차 가해성 발언을 했다고 공동행동은 주장했다. 공개된 녹취록에서 음 기획처장은 "학생이 받은 나름대로의 성적 희롱과 노동에 대한 불편한 요구가 다른 학생과 비교하면 정도가 작지 않냐" "적극적으로 싫다는 의사 표시는 하지 않았나"라고 물었고, 김경희 성평등상담센터장은 "나 같았으면 안 만났을 것 같은데, 만나게 된 이유나 경위를 설명해줄 수 있냐"고 발언했다.

"더는 권력형 성폭력 안 돼" 파면 요구

공동행동은 학교에 A교수 파면과 피해자 보호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단체는 A교수 파면을 촉구하는 2만여 명의 서명을 모아 학교에 제출한 바 있다. 여기엔 자신이 홍익대 학생이라고 밝힌 사람 8,000여 명이 포함됐다.

공동행동은 "A교수가 마지막이 돼야 한다는 학생과 시민의 요구를 배반하지 말라"며 "2만여 홍익대 학생들이 A교수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학교를 다니게끔 A교수를 조속히 파면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또 "2022년은 권력형 성폭력이 없는 홍익대 원년이 되어야 한다"면서 "올해 말까지 A교수가 파면되지 않는다면 해당 교수에 대한 인권위 진정과 형사고발 절차를 재개하고, 홍익대에 대한 소송 제기를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A교수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억울함을 표했다. 학생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학교가 자신의 해명을 일절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는 내게 무엇이 성비위로 인정된 것인지도 알려주지 않았다”며 “성추행, 성희롱이 아닌 성비위라는 표현을 쓴 것만으로도 이번 통보는 외부 압력에 떠밀려 내놓은 결정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징계 처분이 나와 법적 근거를 확보되는 대로 공동행동 측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