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등판의 덫

입력
2021.12.08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언제 공개 석상에 나올지를 두고 여러 말이 나온다. 권성동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8일 “연예인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적절한 시기에 나타날 것”이라며 뜸을 들였다. 반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영부인은 국가를 대표하는 공인으로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할 자리”라며 등판을 압박했다.

□ 대통령 후보 부인이 범법 혐의가 있다면 검증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이 후보 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연예인이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막중한 위상을 가진 영부인 후보이기 때문이어서 권 사무총장의 언급도 논점을 피하는 셈이다. 문제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김씨 검증 대상으로 주로 삼는 게 사생활 의혹이라는 점이다. 한 친여 매체는 최근 제보자를 내세워 김씨가 유흥주점에서 접대했다는 이른바 ‘쥴리’ 의혹을 다시 띄웠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도 관련 기사를 링크하며 김씨를 조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윤 후보 선대위 측은 "끔찍한 인격 살인과 허위 사실 유포"라고 반박했다.

□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부인 멜라니아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그 역시 남편의 선거 운동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과거 누드 사진이 유출되는 등 잡음이 그치지 않았다. 슬로베니아 출신인 그의 불법 이민 여부가 검증 대상이긴 했으나, 힐러리 클린턴 후보 지지자들은 어색한 영어발음, 성형, 누드 사진 등을 도마에 올리며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돈 많은 중년 남성의 젊은 아내)’라고 조롱하는 데 열중했다.

□ 이런 공격에는 ‘천박하고 헤픈 여성이 퍼스트레이디 자격이 있느냐’는 비아냥이 깔려 있다. 하지만 여기엔 가부장적 여성관, 여성 사생활을 캐려는 관음증적 시각 등이 결부돼 있어 여성 혐오로 빠지기 십상이다. 2016년 미국 대선 결과는 트럼프의 대역전승이었다. 멜라니아는 변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힐러리 후보 지지자들의 위선만 드러낸 셈이었다. 김건희씨를 조롱하는 민주당 지지자들도 비슷한 덫에 빠질지 모르겠다.

송용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