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문재인 "나중에" 2021년 이재명 "다했죠?"… '차별말라'는 요구, 어려운가

입력
2021.12.08 16:20
이재명 '차별금지법' 외친 청년에 냉소
4년 전 문재인 후보의 "나중에" 기시감
윤석열은 "개인의 자유 침해" 주장도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릴게요." (2017. 2.16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다 했죠?" (2021.12. 7.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운동 와중 맞닥뜨린 성소수자를 대하는 두 유력 대선 후보의 반응은 4년의 시차가 무색하게도 닮은꼴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영상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금융경제세미나 초청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대를 찾았다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는 세명의 청년과 마주쳤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연령, 인종, 장애, 종교, 성적 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자는 내용이다. 이들은 '차별금지법 14년의 유예, 민주당이 책임져라' '나중에를 끝내자, 차별금지법이 먼저다' 등이 쓰인 팻말을 들고 있었다.


“저는 성소수자입니다. 저의 존재는 사회적 합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합리적 이유없이 부당하게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차별금지법(제정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사과하십시오. 저와 이 땅의 성소수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여성에게 사과해주십시오.”

청년들의 외침에 이 후보는 그저 미소를 지은 채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후 인사하듯 한 손을 들어 "다 했죠"라고 묻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멀어지는 이 후보의 등 뒤로 "사과하라"라는 말이 메아리쳤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 후보는 앞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속도조절 의사를 밝혔다. 지난달 8일 한국교회총연합회를 찾아 관련 법을 두고 "일방통행식 처리는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하면서다. 청년들의 방문은 이 후보의 해당 발언을 성토하기 위해서였다.

어딘가 익숙한 장면이다. 4년 전인 2017년 2월 16일,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도 선거에 앞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바 있다.


"저는 여성입니다. 그리고 동성애자입니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십니까,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제 평등권을 반반으로 자를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유력 대선후보시면 대답을 해주시란 말입니다."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정책공간 국민성장'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던 문 대통령은 "(연설을) 듣고 나서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으나 질문이 계속되자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리겠다"라고 했다. 장내의 일부 청중은 "나중에! 나중에!"라고 외치며 박수를 쳤다. 이 여성은 목소리를 높여 "동성애자 인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확실하게 말씀해달라"라고 외쳤지만 "나중에"라는 외침과 함께 울려 퍼진 박수소리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 포럼에 앞서 문 대통령도 한기총 등을 만나 "동성애를 지지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같은해 4월 성소수자 단체의 기습시위에도 휘말렸다. 성소수자 단체는 여의도 국회 본청 본청 계단에서 열린 국방안보 관련 기자회견장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나타나 "왜 내 존재를 반대하나" "사과하라"고 외쳤다. 경호원 등이 즉시 이들을 제지했으며, 문 대통령은 미소 띤 채로 이들을 바라보다가 입장 표명 없이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문 대통령은 당시 포럼 현장에서 "그래도 말씀하시는 게 목적일 것 아닙니까. 나중에 차분하게 말씀하십시다"라는 말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들을 달랬으나, 그의 임기가 끝나가는 이날까지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이 2021년 6월 차별금지법이 '30일 안에 10만명 이상 동의'라는 국민동의청원 요건을 갖춰 국회로 넘어갔고, 또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달 9일 국회는 차별금지법 심사기한은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시점인 2024년 5월까지로 미뤘다. 2024년이면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가 들어선다. 또 다른 유력후보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차별금지법을 두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문제가 많이 생긴다"라고 말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차별금지법 제정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셈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지만 여론은 다르다. '한겨레'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5~26일 전국 성인 1,027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71.2%(매우 찬성 32.9%, 대체로 찬성 38.3%)였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찬성하는데, 대선 유력후보들은 왜 반대편에 서 있을까.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