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요즘 ‘조국 사태’에 대한 사과를 입에 달고 산다. 매서운 정권 교체 바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문재인 정부 핵심 지지층의 실망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지류인 ‘조국의 강’을 넘은 이 후보는 본류라 할 수 있는 ‘문재인의 강’ 앞에서는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 정부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이 후보의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7일 민주당 선거대책위 관계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정권 심판론을 앞세워 거침 없이 치고 나가는데, 이 후보는 운신의 폭이 좁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의 유산을 적극 계승하면서도 문 대통령과는 다른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요구받는 상황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40%에 육박하지만, 이 후보의 지지율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이 후보가 문 대통령과 차별화에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이유다. 이 후보가 신경 써야 하는 숫자는 또 있다. 50%대가 넘는 정권 심판 여론이다. 문 대통령을 오롯이 계승하는 것만으로는 이 후보의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딜레마다.
이에 이 후보는 현 정부와 각을 세우되, 청와대에 대한 비판은 건너뛰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때리지만,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성과나 리더십 등 친문재인계(친문계)를 자극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조국 사태 사과는 진정한 차별화라기보다 변죽 울리기에 가깝다"며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 것처럼, 이런 차별화로는 유권자들이 '이재명의 민주당은 다르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6일 MBC 인터뷰에서 “(현 정부와) 달라지려고 하면 ‘뒤통수 때리는 게 아닐까’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하는 정서가 (여권에) 남아 있다”고 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 후보는 친문계와 신뢰 관계가 두텁지 않기 때문에 차별화를 하려고 하면 청와대가 경계한다"면서 "그렇다고 이 후보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고 평가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 말에 "나를 밟고 가라"는 메시지를 직·간접적으로 표출했다. 여당 대선후보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성과를 온전히 평가받는 것에 좀 더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일본 수출 규제부터 코로나19까지 연이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무역의 힘으로 선진국이 됐지만 이 같은 소중한 성과마저도 오로지 부정하고 비하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6일 무역의 날 기념식) “이런 성취들을 부정하고 폄훼한다면 우리 정부에 대한 반대나 비판을 넘어 국민들이 이룩한 성취를 폄훼하거나 부정하는 것"(지난달 21일 국민과의 대화) 등의 발언에서 이런 생각이 엿보인다.
친문계인 윤영찬 의원도 7일 페이스북에 "우리 정부에서 다 하지 못한 것을 '나는 더 잘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소중한 성과들마저 깎아내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밝히며 문 대통령과 입장을 같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