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시장의 급성장에 따라 올해 국내에서 제작된 CD 등 음반의 국내외 판매량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5,000만 장을 넘어선 데 이어 연말까지 누적 판매량은 5,600만~5,800만 장에 이를 전망이다. 반면 국내 음원 서비스 사용자의 이용량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줄곧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처럼 대조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7일 가온차트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대중음악 음반 판매량은 약 5,400만 장을 기록했다. 5년 전인 2016년 판매량(1,080만 장)의 5배에 이르고 팬데믹 직전인 2019년 기록한 2,509만 장의 2배가 넘는다. 싱글 음반 ‘버터’를 300만 장 가까이 팔아치운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NCT 127, NCT 드림, 세븐틴, 엑소, 스트레이 키즈, 엔하이픈 등 남성 그룹들이 판매량 증가를 주도했다. 국내외 판매 비중은 상반기 기준 국내 45%, 해외 55% 수준이다. 해외 국가 중에선 미국과 중국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2,028만 달러)에 밀려 국가별 한국 음반 수입 순위에서 3위(1,690만 달러)를 기록했던 중국은 올해 10월까지 4,089만 달러어치를 수입하며 다시 2위로 올라섰다. 미국도 3,237만 달러로 지난해 대비 50% 이상 증가율을 보였다.
K팝 음반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코로나19로 인한 가수 관련 상품에 대한 수요 증가와 신규 팬덤의 유입이다. 특히 K팝에 관심을 갖게 된 팬들이 늘면서 최근 앨범은 물론 과거 앨범 판매량도 늘고 있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은 “2017~2020년 상반기엔 전체 판매 음반 가운데 발매된 지 6개월 이상 지난 구보(舊譜)의 비중이 6~8% 수준이었는데 올해 상반기는 14%로 크게 늘었다”며 “K팝 시장에 신규 팬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해당 가수의 지난 앨범들을 활발하게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음반 판매량의 급성장과 달리 국내 음원 시장은 오히려 침체에 빠져 있다. 가온차트 집계 결과 올 10월 국내 주요 음원 서비스 사용자의 상위 400곡 이용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3.5%,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28.6% 감소했다. 10월만 그런 건 아니다. 지난해 1년 내내 지속적으로 음원 이용량은 2019년 대비 감소세를 유지했고 올해 역시 꾸준히 지난해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2019년 대비 평균 감소율은 25% 안팎에 이른다.
음원 서비스 업계 전문가들은 음원 이용량 감소에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음원 스트리밍 업체 A사 관계자는 “음원 이용자들이 출퇴근 시간이나 이동 중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은데 팬데믹 이후 전체적으로 이동이 줄어든 측면이 있고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르내리는 유명 가수들의 신곡 발매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팝의 세계적 인기로 인한 투자 쏠림 현상이 국내 음원 시장의 위축을 가져왔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김진우 위원은 “몇 년 전만 해도 남성 K팝 그룹은 주로 해외 시장을 노리고 여성 K팝 그룹은 국내 시장에 집중했는데 블랙핑크의 성공 이후 해외 시장을 겨냥한 여성 그룹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K팝에 투자가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국내 음원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는 투자가 줄고 있다는 분석이다.
넷플릭스나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디즈니플러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사용 증가가 음원 소비 감소로 이어졌다는 견해도 있다. 음원 스트리밍 업체 B사 관계자는 “매체가 다양해지고 디지털 콘텐츠 소비 방식이 다각화하면서 과거엔 이동 중이나 집에서 모바일 기기로 음악을 듣던 사용자들이 이제는 OTT나 동영상 콘텐츠를 보는 일이 늘어나지 않았나 싶다”며 “K팝 팬덤을 제외하면 특정 가수에 대한 음원 이용자들의 집중도, 충성도가 예전만 못한 것도 여러 요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