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보호한도 20년째 5000만원 '제자리'… 위험 수준 높아졌지만 정부는 '뒷짐'

입력
2021.12.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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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자 보호 수준, 주요 선진국 대비 낮아
보험료 인상 따른 대출 금리 인상 우려에 발목
"위기 대응 금융 안전망, 미리 쌓을 필요"

지난 20년 동안 경제 규모는 두 배 이상 커졌지만 '예금자 보호 한도'는 5,000만 원으로 제자리걸음을 해, 금융 사고 시 작동할 금융 안전망 자체가 허술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성장으로 금융 소비자가 맞닥뜨릴 금융 사고 규모 역시 커질 수밖에 없는데, 예금 보호 장치는 외환위기 이후 수준에 머물고 있어서다. 하지만 정부는 보호 한도 인상이 자칫 대출 금리를 높이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미국 25만 달러 보호, 한국 4만 달러 불과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과거 2,000만 원이었던 예금자 보호 한도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2001년 5,000만 원으로 오른 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예금자 보호 한도는 금융사가 파산할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예금을 일부 돌려주는 제도다. 재원은 금융사가 낸 예금보험료로 조성된 예금보험기금을 활용한다.

예금자보호법은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인당 국내총생산(GDP)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예금자 보호 한도가 우리 경제 수준에 걸맞지 않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실제 1인당 GDP는 2001년 1,453만 원에서 지난해 3,557만 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국민이 은행 등에 맡겨둔 예금도 그만큼 증가했다는 의미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예금자 보호 한도 수준은 낮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GDP 대비 보호 한도 비율은 1.34배다. 미국, 영국 등 주요 7개국(G7) 평균인 2.84배에 크게 못 미친다. 달러화 기준 예금자 보호 한도로 보면 미국 25만 달러, 영국 10만8,974달러인 반면 한국은 4만2,373달러에 불과하다.

예금자 보호 한도를 높여야 할 뿐 아니라 주요 선진국처럼 은행, 저축은행 등 업권별로 차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금융권이 2금융권보다 안정적인 만큼 예금자 보호 한도를 더 올릴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최대 난관, 소비자에 비용 전가

이런 점을 감안해 김태현 예보 사장 역시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예금자 보호 한도가 오랫동안 변화가 없어 다른 나라에 비해 보호 정도가 작은 건 사실"이라며 "한도를 높여나가는 방향에는 찬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예금자 보호 한도 인상에 미온적이다. 보호 한도를 높이기 위해 금융사에 예금보험료를 더 부과하면, 대출 금리 인상 등으로 소비자에 비용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금보험료 증가에 난색을 표하는 저축은행 등도 넘어야 할 산이다. 현재 저축은행 예금보험료율은 예금 잔액의 0.4%로 은행(0.08%)보다 5배 높다.

금융위 관계자는 "예금자 보호 한도는 예금보험료 인상과 결부된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은행권 관계자는 "위기가 터지면 뱅크런(집단 예금 인출)은 쓰나미처럼 닥칠 수 있다"며 "미국도 2008년 금융 위기 때 예금자 보호 한도를 10만 달러에서 25만 달러로 올렸는데 미리 금융 안전망을 두껍게 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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