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식과 집단적 권리의식

입력
2021.12.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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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

열등감이 스스로 남들보다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부정적 감정이라면, 자격지심은 자신의 모자람을 남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과도하게 의식하는 데서 생기는 감정이라고들 한다. 열등감의 빗장을 푸는 열쇠가 자기 수용이라면 자격지심의 열쇠는 자기 긍정이다. 자신을 무턱대고 추어올려 반대편 극단의 우월감으로 치닫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이해하고 담담히 인정하려는 노력(의 과정)이 자기 수용이고, 자기 긍정은 주체 되기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타인(세상)의 가치관에 미혹되기보다 주체적 가치관을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공자는 논어에서 '불혹'이라 했다. 불혹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아니라, 자격지심이나 우월감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스스로 옳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모색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 역시 고민과 방황으로 점철되는 과정이지만, 그래서 여전히 흔들리겠지만, 흔듦의 뿌리가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점에서 자격지심과 구분된다.

한편 피해의식은 자신이 부당하게 손해를 입거나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여기는 감정에서 비롯된다. 그 감정이 사회적 공감을 획득할 경우 집단적 권리의식이 될 수 있지만, 개인적·고립적 감정이라면 피해의식이기 쉽다. 피해의식은 더러 비이성적 울분이나 분노처럼 파괴적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극단적 범죄를 낳기도 한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칼럼에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수형자들의 대표적 공통점으로 '사회와 불특정 다수에 대한 피해의식'을 꼽았다.

1980년 12월 8일, 존 레넌을 권총으로 살해한 25세 미국 청년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을 충동한 것도 피해의식이라는 해석이 있다. 예컨대 노래 'Imagine'에서 무소유를 노래하면서 정작 레넌 자신은 막대한 부를 누리는 걸 그는 위선이라 여겨 증오했다는 것이다. 물론 레넌의 팬 대다수는 비틀스와 그의 노래를 사랑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