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 입김 강화"… 카타르·UAE·사우디 '걸프 삼국지' 경쟁 치열

입력
2021.12.05 22:00
WSJ "아랍 걸프 3국, 아프간서 영향력 경쟁"
카불 주재 외교관 증원... 항공편 운항도 재개
"IS 위협 대처, 미국과 긴밀한 관계 맺기 포석"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지 4개월째를 맞은 가운데, 탈레반이 수립한 새 정부에 대한 ‘입김’을 강화하려는 중동 3개 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아프간을 무대로 벌어지는 ‘걸프만 삼국지’의 주인공은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다. 모두 중동 내 대표적인 미국의 동맹국들이다. 아직까지 탈레반 정권의 합법성을 공식 인정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으나, 이들 세 나라가 탈레반 측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는 국제사회의 관련 논의에도 파급 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탈레반이 통치하는 아프간에서 아랍 걸프 국가들이 영향력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 주재하는 외교관 수를 늘린다거나, 지난 8월 이후 잠정 중단했던 항공편을 재개하고 있는 게 대표적 신호라는 게 신문의 분석이다.

'평화협상 무대' 카타르, 가장 앞서 있어

먼저 치고 나간 건 역시 카타르다. 지난 수년 동안 탈레반과 기존 아프간의 친미 정부가 평화협상을 벌였던 곳은 카타르 수도 도하였다. 애초 미국 등 서방 진영과 탈레반, 양쪽 모두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카타르는 8월 중순 탈레반의 카불 장악 이후엔 그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WSJ는 “카타르는 아프간과 서방 사이의 핵심 통로가 되어 있는 상태”라고 짚었다.

실제 많은 국가가 아프간 항공편을 끊은 것과 달리, 카타르는 계속 비행기를 운항해 왔다. 아프간에서 대피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1차 거점 역할도 했다. 카불을 떠난 몇몇 서방국 대사들도 카타르 수도 도하에 둥지를 틀었다. 아프간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있어, 현재로선 가장 앞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 UAE와 사우디가 카타르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최근 들어 부쩍 친(親)탈레반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보다 뚜렷한 쪽은 UAE다. 탈레반의 카불 점령 즉시 자국 대사관을 철수시킨 이 나라는 지난달 21, 22일쯤 카불 대사관 운영을 재개했다. 특히 카불행 항공편 운항도 점점 확대하고 있다. 아프간 민간항공사 ‘캄에어’는 지난주부터 아부다비-카불 노선을 매일 운영하고 있다. 국영항공 ‘아리아나’도 최근 카불-두바이 항공편을 다시 운항하기 시작했다.

UAE·사우디도 최근 친탈레반 행보

탈레반의 신뢰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탈레반의 카불 점령 직전 UAE로 도피한 아슈라프 가니 전 대통령과 관련, UAE는 최근 “아프간 내부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걸 허용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니 전 대통령의 한 측근도 이를 확인했다. WSJ는 “가니 전 대통령에게 일찍부터 UAE는 ‘정치 참여 금지’ 등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사우디도 가세했다. 지난달 30일 카불 대사관의 문을 다시 열면서 사우디는 “아프간 국민에게 모든 영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고 밝혔다. 수도 리야드와 카불을 오가는 항공편 역시 최근 재개했다. 역내 패권을 노리는 사우디로선 대(對)아프간 영향력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처지다.

"UAE, 카타르가 '워싱턴 연인' 되는 것 우려"

걸프 3국의 이러한 움직임엔 복합적 의도가 담겨 있다. 우선 탈레반보다 훨씬 더 극단주의 성향을 띠는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 대처 목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또, 아프간 난민 수십만 명이 이주해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국내 정치를 위해서도 아프간 현안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기저에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포석이 깔려 있을 공산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걸프지역 수석담당관을 지낸 키어스틴 폰텐로즈는 “UAE는 카타르가 ‘워싱턴의 연인’이 되는 걸 바라보면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우려하고 있다”며 “그들은 더 광범위한 외교 정책 목표, 곧 바이든 행정부와의 긍정적 관계를 원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프간을 지렛대 삼은 뒤 미국을 등에 업고, 결국에는 중동 역내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셈법이라는 얘기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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