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여당 일각에서 제기한 다주택자 대상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조치에 대해 “추진계획이 없다”고 정면 반박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까지 선포했던 정부의 부동산 정책 일관성이 표심을 노린 정치권 요구에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사전에 이를 철회해 달라고 압박에 나선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완화 조치는 정부 내에서 논의된 바가 전혀 없고, 추진 계획도 없음을 명확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여당이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가구 1주택자의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높인 데 이어, 다주택자에 대해서도 세제 혜택을 검토하자 강하게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최근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다주택자 양도세 인하를 당 차원에서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배제하지 않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원내수석부대표도 “다주택자의 양도세를 일시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유예를 여당에서 공식 추진하기도 전에 이례적으로 홍 부총리가 ‘선제공격’에 나선 건 양도세 완화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간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에 부정적이었던 여당이 일시적 완화로 돌아서면서 대선 전 여야 합의로 양도세 중과가 유예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다주택자의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50% 감면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거래세는 낮추고, 보유세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여야 간 입장 차이는 크지 않다. 표심을 얻기 위해 관련 논의가 급물살 탈 수 있다는 얘기다. 다주택자 양도세가 완화될 경우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로 집값을 안정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뒤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의 '강공' 배경에는 청와대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 부동산 가격 하락 안정을 목표로 내건 청와대가 여당의 세제 완화 정책에 부정적이라, 정부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지만, 여당이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방안을 철회한 것도 청와대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홍 부총리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그가 소신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시장 혼란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마찰을 빚고 있어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