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 코너에 등장한 '대체육'... 본격적으로 대형마트에 터 잡는 비건 식품

입력
2021.12.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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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한쪽, 붉은 조명이 시선을 사로잡는 축산 코너에 '고기가 아닌 고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생긴 것도, 색깔도, 맛도 냄새도 일반 냉동육과 다를 바 없는 이 고기들은 콩과 밀, 쌀가루 등 100% 식물성 원료로 만든 '대체육'. 환경과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늘면서 비건(Vegan·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적극적인 채식주의)식 생활습관이 유통가 풍경을 바꾸고 있다.

이마트는 2일 수도권 20개 점포에서 푸드테크 스타트업 '지구인컴퍼니'가 개발한 대체육 판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앞서 홈플러스가 '비건존(Vegan Zone)'을 따로 구성해 대체육 판매를 시작하긴 했지만 대형마트 정육 코너에서 다른 육류와 함께 대체육을 파는 건 국내 처음이다.

채식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축산 코너에까지 비건 식품이 비집고 들어간 이유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식품 소비 트렌드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보여줄 수 있는 '가치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해 자연스럽게 대체육이 떠오른 것이다.

채식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보편화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연맹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9명은 축산물 대체 식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했고, 10명 중 2명은 콩 단백질로 만든 대체 식품을 섭취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국내 채식인구는 2008년 15만 명에서 올해 250만 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구인컴퍼니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올해 들어 대체육과 비건시장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난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층을 채식주의자뿐만 아니라 '플렉시테리언(Flexible+Vegetarian·간헐적 채식주의자)'까지 넓힌 것도 최근의 흐름이다. 플렉시테리언은 완전한 채식은 아니지만 환경보호와 동물복지, 건강 증진을 위해 '일주일에 두 끼 채식하기' 등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지구인컴퍼니는 "고기도 먹지만 가끔 가벼운 식단을 원하는 고객이 많다"며 "이들을 위해서는 일단 맛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맛과 식감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체육은 아직 냉동육 형태로만 나오는 데다 다짐육, 버거 패티용 정도로 종류가 한정돼 있어 소비자 선택권이 넓은 편은 아니다. 과거 식물성 고기로 판매됐던 '콩고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대체육을 꺼리는 분위기도 시장 성장에는 장애물이다.

업계에서는 냉장 대체육을 비롯해 다양한 맛과 형태, 소스 등을 꾸준히 출시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힐 계획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채식문화가 발달하고 대체육이 정착된 미국 등의 대형마트들도 전통 육류를 주력으로 하되 동일 공간 내 대체육 비중을 늘리는 추세"라며 "고객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맞춰 대체육 상품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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