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의 신경계는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로 구분한다. 중추신경계는 머리뼈 속에 들어 있는 뇌와 척추뼈로 이루어진 척주강 안에 있는 척수를 말한다. 이들은 우리 몸에서 느끼는 감각을 수용하고 조절하며, 운동, 생체 기능을 조절한다.
몸이 움직이는 과정을 간단히 보면, 우선 몸의 여러 곳에서 수집한 정보가 뇌에 전달되면, 뇌는 이를 분석, 판단하여 적절히 대응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뇌의 명령은 척수와 말초신경을 통해 몸의 필요한 부위로 전달되어 몸을 움직인다. 즉 우리 몸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뇌가 판단하고 조절한다. 그런데 뜨거운 냄비를 무의식적으로 잡았을 때 같은 경우에는 말초에서 받아들인 자극에 대한 정보가 뇌에 전해지지 않고, 척수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반응한다. 즉, 위험한 상태에서는 척수가 뇌 역할을 대신하여 무의식적으로 반응하여 우리 몸을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를 척수반사라 부른다.
그런데 위험한 상황에서만 척수가 임의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걸음을 걸을 때는 의식하지 않아도 양쪽 발이 서로 번갈아 움직이고, 팔이나 몸의 다른 부위도 같이 움직인다. 걸으면서 의식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이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동작이 나오는 수도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 제식훈련 중 같은 쪽 팔다리가 같이 움직여 선생님에게 집중하지 않는다고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운전이나 춤같이 몸을 사용하는 기술을 익히고자 할 때는 같은 동작을 반복하여 연습한다. 이런 반복은 몸이 해당 동작을 기억하도록 해주는데, 뇌의 통제를 받지 않고 척수에서 자동으로 반응하여 몸이 움직이도록 숙련시키는 과정이다. 이 원리는 뇌 일부가 손상되어 손발이 마비된 환자의 마비된 팔다리를 자극하고 운동시킴으로써 어느 정도 기능을 회복시키는 재활치료에 사용되기도 한다.
뇌가 여러 정보를 통합하여 큰 방향을 제시하는 의사결정자 혹은 최고 지휘관이라면, 척수는 일상적인 정해진 업무를 매뉴얼대로 수행하는지를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면서 긴급한 상황에서는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빠르게 대처하는 현장지휘관이라 할 것이다. 현장지휘관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그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이 위임되어 있는지, 그 권한을 행사하기 위하여 상부의 통제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연구윤리 문제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줄기세포논문 조작사건이 국내외에 큰 문제를 일으킨 때부터다. 정부에서는 2007년 '연구윤리확보를 위한 지침'을 제정하여 연구윤리 확립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처음 지침이 나온 후 거의 15년이 되어 감에도 연구부정행위는 줄어들지 않고 최근 들어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정부가 각종 법령을 만들고 과학자들에게 따르도록 요구하는 하향식 접근 방식이 한 가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침을 포함한 여러 법령에서는 연구윤리의 확립보다 연구 부정행위 근절과 제재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어서 연구 현장에는 법령에 규정된 부정행위만 아니면 해도 된다는 안일한 의식이 팽배하게 되었고, 그 결과 연구계 스스로 올바른 연구윤리의 정립에 충분한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공표된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령에 연구진실성 확보, 학문교류, 이해충돌, 연구대상자 보호, 건전한 연구실 문화 조성 등에 대하여 연구기관이 자체 규정을 만들어 연구윤리 확보에 힘을 쓰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시행령에 연구부정행위와 제재 등의 내용이 아직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연구윤리 확립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향 전환으로 우리나라의 연구윤리가 확립되고 연구 부정행위가 줄어들어 국민의 신뢰를 얻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자 개개인에게 연구윤리가 체득되어 무의식적으로도 올바른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체득시켜야 한다. 이런 노력은 연구기관이 충분한 자율성을 가지고 스스로 노력할 때 좋은 성과를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