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못하는 '배달로봇'... 인도도, 차도도 다닐 수가 없다

입력
2021.11.30 04:30
11면


“배달로봇 좋죠. 비용도 아낄 수 있고 편리하죠.
근데 인도로 다닐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법 고치려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유통업계 관계자

최근 편의점 등이 실외 배달로봇 시범 운영에 돌입하며 '로봇 배송'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정작 유통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배달로봇은 15~30분 거리 배달 시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고 배달원 부족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첩첩 규제 탓에 배달로봇 개발에 성공해도 인도와 차도 그 어느 곳도 다니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유통업계가 도입을 망설이는 이유다.

'실외 배달로봇'인데 다닐 곳 없는 로봇들...켜켜이 쌓인 규제 탓

29일 로봇업계에 따르면, 실외 자율주행 배달로봇은 현재 4가지 법에 저촉돼 개발이 가로막힌 상황이다. 우선 도로교통법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로봇은 인도와 차도, 횡단보도를 모두 다닐 수 없다. 법이 사람도 차도 아닌 로봇을 규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30㎏ 이상 동력장치의 공원 출입을 막은 공원녹지법에 따라 공원 주행도 할 수 없다. 사실상 야외에서 로봇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셈이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 역시 물류를 나를 수 있는 주체를 사람으로 한정했다. 운송은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화물자동차와 이륜자동차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자율주행 로봇이 물건을 나르는 것은 불법인 것이다. 이에 정부는 운송 수단에 드론과 로봇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내년 초 법 개정에 나선다.

개인정보보호법도 자율주행 로봇 개발의 발목을 잡는다. 배달로봇은 카메라로 장애물 등을 인식하는 자율주행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데,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촬영한 영상을 저장하거나 송출할 수 없는 등 제약이 많다.


2025년까지 '배달로봇' 보도 통행 허용하겠다는 정부

정부도 배달로봇 개발을 가로막는 규제들을 인지하고 있다. 올해는 정부가 실시한 규제 샌드박스 덕분에 실내 배달로봇의 승강기 탑승이 허용됐다. 로봇의 엘리베이터 탑승을 위해 필요한 안전 요구사항에 관한 국가표준(KS) 제정도 추진 중이다.

현재 정부는 실외 배달로봇의 보도 통행을 허용하기 위한 안전성 검증 기준을 검토하고 있다. 내년까지 공원에 출입할 수 있는 동력장치의 무게 제한(현 30㎏)을 완화하고 2025년까지 보행속도(4~6㎞/h)로 주행하는 자율주행 로봇의 안전성 기준을 마련해 인도 통행을 허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그 사이 유통업계는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승인받아 제한된 공간에서 실외 자율주행 배달로봇 서비스를 시험 운영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이 경기 수원시의 주상복합 아파트 광교 앨리웨이에서 운영 중인 '딜리드라이브', 서울 강남 3구 세븐일레븐 매장에서 운영 중인 '뉴비'가 대표적이다.


'로봇을 어떤 존재로 바라볼 것인가' 사회적 합의부터 필요

다만 전문가와 로봇업계는 법과 규제가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각각의 법을 각개전투식으로 고치려하기보다는 '로봇을 어떤 존재로 바라볼 것인가,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로봇기술은 1년만 뒤처져도 다른 세상이기 때문에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아니면 규제가 경쟁력을 없애는 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들은 로봇을 퍼스널 딜리버리 디바이스(Personal delivery device)로 정의해 배달로봇이 인도, 횡단보도 등을 건널 수 있다. 미국은 2016년 버지니아주를 시작으로 워싱턴DC, 펜실베이니아주 등에서 배달로봇 주행을 허가했다. 일본은 올해 안에 배달로봇의 인도 주행을 허용할 예정이다.

조소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