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궁의 진짜 구조물

입력
2021.12.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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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수정궁2- 디킨스의 수정궁

1851년 런던박람회 입장료는 개막 첫 주 1파운드, 이후 3주간은 5실링, 폐막 직전에는 1실링으로 점차 낮아졌다. 귀족과 젠트리(gentry) 등 중상류층이 먼저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한 거였다. 1파운드는 20실링, 1실링은 12펜스다. 한 자료에 따르면, 빅토리아 시대 일반 노동자가 하루 10시간 주 6일 노동으로 번 돈은 약 3실링 9펜스, 벽돌공과 목수 등 기능공 주급은 6실링 6펜스였다. 19세기 런던 여성 노동자가 연간 일해서 버는 돈은 30파운드 안팎이었다. 런던 서민에게 수정궁이 눈부셨던 건 단지 건축적 장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런던에 체류하며 시드넘으로 옮긴 뒤의 수정궁을 본 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 공학도 출신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수정궁과 지하실을 대비하며, 완성된 이상사회에서 부품처럼 왜소해진 개인을, 정신(이성)의 오만함에 포획된 무리들의 '맹목'을, 정신적 자유와 자율의 억압을 종말론적으로 환기한 것도 저 현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10세 무렵 가족과 함께 런던에 정착해 12세 때부터 구두약 공장 견습공으로 살았던 '올리버 트위스트'의 작가 찰스 디킨스(1812~1870)가 박람회를 둘러봤을 것 같지는 않다. 당시 유명 작가였던 그는 잡지 칼럼 등을 통해 영국 노동자의 실상을 호도하는 박람회를 비판-조롱했고, 수정궁을 겨냥해 1852년 신작 제목을 '황폐한 집(Bleak House)'이라 지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은 1860년 12월 1일 자신이 편집한 주간지 'All the Year Round'에 연재를 시작한 만년의 작품이다. 그 작품에서도 그는 물질적 부와 권력에 기반한 계급·계층(의식)의 허망한 토대와 신분 차별(의식)의 비열함과 얄팍함을 통쾌하게 걷어찼다. 물론 그의 발길질도 수정궁의 구조물, 즉 계급·계층 차별에 닿지는 못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