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빠르게 변이 알리고 고립된 남아공의 불만… 美, 중국 겨냥 일침도

입력
2021.11.28 19:30
"박수 받아야 할 일 하고, 처벌받고 있다"
'백신 사재기' 책임론에 정치적 결정 비판
美 정부·학계 "투명한 정보 공유 높이 평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를 최초 보고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세계 각국의 국경 차단 행렬에 불만을 토로했다. 투명한 정보 공유로 전 세계의 감염병 공동 대응에 기여한 대가가 '고립'으로 돌아왔다는 주장이다. 국경 봉쇄의 바이러스 전파 차단 효과가 실제로는 크지 않은 건 물론이고, 향후 불이익을 우려해 또 다른 새 변이 발견 사실을 숨기는 상황마저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아공 외교부는 27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남아공이 오미크론 변이 발견으로 처벌을 받고 있다"고 불평했다. 각국이 자국을 오가는 항공편을 끊자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새 변이를 더 빨리 발견할 수 있는 능력에 벌을 주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니콜라스 크리스프 남아공 보건부 사무차관 대행도 전날 "남아공처럼 새 변이를 스스로 검출할 능력이 있는 나라도 앞으로는 새 변이 발견 사실을 공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세계를 향해 경고했다. 오미크론 변이가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된 지 약 나흘 만에 유럽연합(EU)과 미국, 영국,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이 일제히 남아공에 대한 여행 제한령을 내린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사실 외부에서도 남아공의 '신속한 대처'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고 있다. 샤론 피콕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중보건·미생물학 교수는 미 CNN방송 인터뷰에서 "남아공 보건부와 과학자들은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대응, 전 세계에 경종을 울린 데 대해 박수를 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날레디 판도르 남아공 국제관계협력 장관과 코로나19 백신 협력을 논의한 회담에서 남아공 정부의 투명한 정보 공유를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남아공의 공을 인정하는 동시에, 코로나19 바이러스 최초 발견 시 불투명한 대응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샀던 중국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각국의 남아공 여행 제한령은 벌써 이 나라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최근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던 케이프타운 중심가에는 관광객들이 사라졌다. 1년 전 베타 변이 발견 시 남아공을 상대로 취해진 여행 제한령에 따른 타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폭탄'을 맞은 격이다.

억울한 남아공을 중심으로 '선진국 책임론'도 등장했다. "백신 접종률이 낮은 곳에서 변이가 나타나면 결국 팬데믹 종식은 어렵기 때문에 균형있는 백신 공급이 중요하다"는 경고에도 불구, 선진국들이 백신을 독점하다시피 한 탓에 변이 바이러스가 자꾸만 등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선진국들은 백신 접종률이 60~70%를 넘는 반면, 아프리카는 12억 인구의 단 6%만 예방접종을 받은 상태다. 아프리카연합(AU)의 백신 공급 책임자 아야데 알라키자는 영국 BBC방송에서 "(변이 출현은) 고소득 국가들이 (백신을) 사재기한 결과"라며 "여행 제한령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에 기반을 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서도 변이가 발견됐는데, 아프리카에 대해서만 '봉쇄 조치'를 취한 사실도 지적했다.

오미크론 변이의 전파력이나 치명률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이 우려만 커지는 가운데, 델타 변이와 비교해 위험성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새 변이 출현을 처음 보건당국에 알린 남아공 안젤리크 쿠체 박사는 오미크론의 증상에 대해 "특이하긴 하지만 가볍다(mild)"고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밝혔다. 다만 "당뇨나 심장병과 같은 기저질환이 있거나 백신을 맞지 않은 노인에게는 여전히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진달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