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르포]"제일 급한 기는 문재인 심판이지만도, 윤석열이도 쫌..."

입력
2021.11.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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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D-100 대구 민심은?]

"윤석열이를 뽑을 것 같긴 한데. 갸도 좀... 좀 찝찝한 게 있어 갖고."

대선을 104일 앞둔 25일. 동대구역에서 안내 업무를 하는 박모(75)씨에게 '누구를 뽑을지 마음을 정했나'라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대구 토박이라는 그는 '문재인' '이재명'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손사래를 쳤다. "내한테 그런 건 묻지도 마라!" '윤석열' 앞에 얼굴이 다시 펴지지도 않았다. "자세히는 모르지마는, 테레비에 나오는 것들을 보면 종합적으로 느낌이 좀 그렇다..."

"문재인 정부가 원캉 못해서... 일단은 정권 교체"

동대구역→서문시장→동성로→경북대를 돌며 들어 본 대구 민심은 '일단은 정권 교체'로 요약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 대한 선호를 따지기 전에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데 여론이 모였다. 서문시장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은미(53)씨의 말. "민주당이 해도해도 너무 못한다 안 카나. 윤석열이가 하면 조금이나마 나을 것이란 기대가 있데이. 정치 오래 했다는 사람들한테 많이도 속았다 아이가."

"국민의힘이니까 무조건 윤석열"이란 얘기도 심심찮게 나왔다. 평생 서울 땅을 단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다는 택시기사 이용오(68)씨의 얘기. "잘한다고 뽑나? 못 해도 우리 것이 안 낫겠나 싶어서 뽑아 주는 거지. 호남에서 민주당 뽑는 건 뭐 민주당이 잘해서 뽑아 주나?" 서문시장 상인 노승호(36)씨는 "'윤석열이 돼야 한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고민 없이 투표할 생각"이라고 했다.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대구 민심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된다. 이달 22, 23일 머니투데이·한국갤럽의 조사에서 윤 후보의 대구·경북(TK) 지지율은 58.9%였다. 2012년 대선을 약 100일 앞두고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얻은 TK 지지율(58%)과 맞먹는다. 당시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의 대구 득표율은 80.1%. 윤 후보가 정권 교체 민심에 제대로 올라타면 '몰표'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윤석열, 서민 마음 몰라" "정치권 가더니 변했다"

그러나 대구는 윤 후보를 아직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 듯했다. "윤석열이도 쫌..."이라고 말을 맺은 사람이 많았다. 국민의힘 대구시당 관계자는 "과거엔 대선후보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됐다면, 이제는 당이 중심"이라며 "윤 후보에 대한 호불호보다는, 그냥 우리 후보가 이겨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을 윤 후보 개인의 호감도가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동성로에서 만난 50대 최재복씨는 "윤 후보는 아직 대통령감은 아니다. 토론회를 보면 서민들의 생각 패턴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모른다"고 했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원희룡 전 제주지사를 찍었다는 남모(62)씨는 "처음에 윤 후보를 지지한 건 꼿꼿하고 정의에 대한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정치권에 들어오고 나서는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고 했다.

이남자 "윤석열, 근본이 없다" 이여자 "투표 안 해"

윤 후보에게 가장 냉랭한 건 2030세대 남성들이었다. 홍준표 의원에 대한 미련을 숨기지 않았다. 서문시장 내 은행에서 일하는 임기훈(27)씨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뽑을 바에는 윤 후보에게 표를 던질 생각"이라면서도 "진짜 지지하는 건 이준석 대표와 홍 의원"이라고 했다. 왜 윤 후보보다 홍 의원일까. "윤 후보가 국민의힘 입당 전에 버티는 것부터 보기 좋지 않았다. 윤 후보는 정치에 있어 '근본'이 없지 않나."

동성로에서 만난 직장인 정모(31)씨는 "낙후된 대구를 어떻게 살릴지, 윤 후보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2030세대 여성들은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윤석열, 이재명 둘 다 싫어서 대선에 아예 관심을 껐다. 투표 계획도 없다"(대구 수성구 정모씨)고 체념하듯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박근혜 수사에 복잡한 심리... "사면한다면 尹 뽑겠다"

노년층은 윤 후보가 검사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사실을 여전히 혼란스러워했다. 서문시장 상인 정백아(83)씨는 정치 얘기를 꺼내자마자 "박 전 대통령이 안 그래도 작았는데, 감옥에서 전보다 더 조그마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추진하겠다고 했다'고 했더니,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그러면 됐다. 윤석열이를 찍어 줘야지..."

윤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 택시기사 이용오씨의 말. "박 전 대통령은 다른 정치인들과 좀 다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생각해서라도 무조건 뽑아줘야 한다는 게 대구 민심이었다. 윤 후보는 그런 건 없다."

정백아씨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구가 고향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결혼도 이(서문시장) 근처에서 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일가를 향한 대구의 압도적 지지에는 독특한 역사적 맥락이 있다는 뜻이다.

지역 현안은 역시 경제였다. 장기간 침체된 지역 경기에 지쳐, 대선후보들의 경제정책을 보고 최종 판단을 하겠다는 목소리가 컸다. 택시기사 신재우(63)씨의 토로. "'민주당이니, 국민의힘이니가 뭐가 중요하다꼬. 앞으로 우리가 먹고 살려면, 누가 좋을지 제대로 한 번 고민해 봐야 한다. 있는 사람들이야 잘 살겠지만, 서민들은 억수로 힘들데이. 서울, 부산에선 택시 못 잡아 난리라더만, 대구에선 종일 택시를 몰아도 5만 원도 못 벌 때가 있으니..."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한국갤럽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대구= 손영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