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2월 2일 오후 8시 27분께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무대 위 조명장치가 터졌다. 전기과열로 인한 합선이었다. 발화된 불은 순식간에 무대로 번졌고, 유독가스와 불길은 공포에 휩싸인 관객들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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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민회관에서는 오후 6시부터 문화방송(MBC) 개국 11주년 기념 10대 가수 시상식을 겸한 청백전이 열려 4천여 관중과 방송국 관계자가 몰려있었다. 화재는 TV중계가 끝난 직후였지만 입장 관객과 가수 등은 퇴장하기 전이라 대혼잡을 일으키며 대규모 참사로 이어졌다.
급히 대피하던 사람들은 계단에서 넘어졌고, 2, 3층에서 유리를 깨고 뛰어내리는 등 시민회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당시 화염에 싸인 건물 4층 유리창에는 6세 어린이 조수아 양이 창틀에 다리가 낀 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조 양은 아버지와 함께 시상식을 구경하러 갔었다. 조 양의 아버지는 딸을 창틀에 올려놓고 자신이 먼저 빠져나와 구하려고 했으나 연기에 질식되는 바람에 10여m 아래 땅바닥으로 추락, 의식을 잃었다. 창틀에 앉아 아빠를 기다리던 조수아 양은 달아오르는 열기와 연기를 견디지 못해 몸부림치다 회전 창틀이 돌아가는 바람에 발목이 낀 채 거꾸로 매달렸다.
6분여 동안 공포 속에 사투를 벌이던 조 양을 발견한 이영주 소방관이 굴절사다리를 4층에 갖다 댔다. 사다리가 거의 4층에 닿을 무렵 조수아 양의 발목이 끼었던 창틀이 떨어져 이 소방장의 안전모를 때리고 조 양은 사다리 끝부분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져 목숨을 구한다. 이 극적인 순간은 당시 한국일보 박태홍 기자에 의해 포착됐다. 이 사진은 계엄령 하의 엄격한 보도통제로 국내 신문에 실리지 못했고 AP통신을 통해 해외로 보내져 요미우리, 아사히 등 외지에만 보도됐다. 조수아 양은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만 이날 사고로 52명이 숨졌고 76명이 다쳤다.
서울시민회관 화재사고는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1974년 대왕코너 화재와 함께 1970년대 서울시 3대 화재 사건 중 하나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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