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전략비축원유(SPR) 저장에 나선 건 1973~1974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자원 무기화로 오일쇼크를 겪고서다. 한국석유공사는 9개 기지에 9,700만 배럴을 비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루이지애나, 텍사스의 석회암 동굴에 6억~7억 배럴을 저장했다. 이후 비축유는 단 4차례 덮개가 열릴 만큼 비상시에 사용됐다. 1991년 걸프전과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2011년 리비아 사태는 대표적이다. 코로나 팬데믹에 세계가 결국 비축유 마개를 열고 있다.
□ 고유가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미국 주도로 중국 인도 일본 영국 한국 등 6개국이 비축 원유를 풀기로 했다. 향후 수개월에 걸쳐 미국 5,000만 배럴을 비롯 7,000만~8,000만 배럴이 시장에 공급된다. 미중 양국까지 공조한 비축유 방출은 그만큼 인플레를 잡는 데 유가 안정이 절실해서다. 역사적으로 유권자들은 유가에는 영향력이 없는 통치자에게 고유가의 책임을 묻곤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수감사절을 이틀 앞두고 조치를 내린 것도 유가는 곧 정치인 까닭이다.
□ 비축유 방출 효과는 낙관적이지 않다. 유가 상승세는 주춤했으나 단기에 그칠 걸로 전문가들은 본다. 전 세계 하루 원유 소비량이 거의 1억 배럴에 달하고 가격 결정 요인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바다에 물 한 방울’, 다시 말해 조족지혈로 평가했다. JP모건은 내년엔 브렌트유 기준으로 배럴당 평균 88달러로 더 오를 걸로 봤다. 수요는 코로나 이전보다 증가했는데 공급은 1년 늦게나 이에 맞출 수 있다는 예상이다.
□ OPEC에 러시아 등을 더한 OPEC플러스가 추가 증산 요구를 거부하는 것도 문제다. 팬데믹으로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할 만큼 심한 타격을 입어 고유가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내달 2일 회의에서 하루 40만 배럴 증산을 중단시켜 비축유 방출에 맞대응할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전 세계가 글래스고 회의에서 지구온난화를 피하기 위해 화석연료 의존을 줄일 것을 촉구한 건 지난 13일. 동시에 세계는 산유국에 공급량을 늘려 달라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놓여 있다. 대체에너지 붐에도 불구하고 석유에 중독된 문명을 확인시키는 비축유 방출 논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