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고전했던 메모리반도체 업계에 훈풍의 조짐이 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비대면 서비스가 재차 강조된 가운데 차세대 먹거리로 지목된 '메타버스'가 등장하면서다. 3차원(3D) 가상세계인 메타버스 운영을 위해선 고사양의 메모리반도체가 필수다. 반도체 업계 안팎에선 벌써부터 연말 바닥 탈출에 성공한 데 이어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 상승세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서버 업체들의 투자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6일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25일 기준 주요 D램 제품의 현물 거래가격이 일제히 반등했다. 이 중 지난 7월 15일 고점(4.62달러)을 찍고 46% 하락한 컴퓨터(PC)용 D램 제품(DDR4 8Gb)의 경우 이날 전일 대비 0.82% 상승한 3.21달러에 거래됐다. D램 현물 거래가격의 경우 반도체 기업과 데이터센터 업체 사이에 이뤄지는 고정가격의 선행지표로 작용한 만큼, 이르면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엔 전체 D램 가격도 바닥에서 벗어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그동안 어두운 전망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왔던 메모리반도체 업계 입장에선 호재다.
실제 올해 메모리반도체 업계는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부진했다. 메모리반도체 업계의 대표 주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도 연중 내리막길을 걸었다. 올 1월 삼성전자 주가는 9만1,000원을 찍고 현재 7만3,0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2월 14만8,500원에서 21%가량 빠진 11만6,000원대에 머무른 상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도체 부품난이 PC, 스마트폰 생산까지 영향을 주면서 메모리반도체 수요 역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급난은 여전하지만, 업체들은 미래에 대비한 투자는 늘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규모는 1,460억 달러(약 173조 원)로, 팬데믹 이전보다 약 50% 늘었다. 여기에 미국 정부 주도로 새로운 반도체 공급체인을 구성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텍사스주 테일러에 신규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짓기 위해 170억 달러(약 20조2,000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으며, 앞서 인텔과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 미국 기업들과 대만의 TSMC도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수급 상황이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 배경이다.
시장 수요도 커지고 있다. 최근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메타버스 콘텐츠에 대거 뛰어들면서 데이터 센터를 확충하고 있어서다. 메타버스 구현을 위해선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대용량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수다. 전후좌우 360도를 모두 보여주는 VR 콘텐츠의 경우 기존 2D 영상 대비 5배 이상의 데이터 전송량이 소요된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사태가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원격근무용 PC 수요도 늘어날 것이란 예상까지 더해지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메타버스 구현을 위한 클라우드, 헤드셋(VR) 등에 고사양 그래픽과 고용량 반도체 탑재도 필수적이다"며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북미 클라우드 사업자와 델, HP 등 PC 업체들의 4분기 D램 주문량이 기존 전망치에서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