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취임 후 첫 차별금지법 언급... 뭉개는 與 향한 '촉구'

입력
2021.11.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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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설립 20주년 기념식서
"차금법 제정,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
시대 변화 따른 인권규범 만들어야"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과 관련해 “우리가 인권 선진국이 되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아직은 이르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정치권을 향해 전향적 태도를 주문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20년 전 우리는 인권이나 차별 금지에 관한 기본법을 만들지 못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 안에 인권 규범을 담는 한계가 있었다”며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인권 규범을 만들어 나가는 일에 함께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임기 중 차별금지법을 공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한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가 처음으로 발의했지만 보수기독교계의 강한 반발로 현재까지 입법에 실패했다. 문 대통령이 차기 대선을 약 3개월 앞두고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을 공론화한 것은 ‘인권변호사’ 출신으로서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로 보인다.

이날 기념식에는 국내 기구ㆍ시민단체 관계자 외에도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유럽연합 대사,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미국대사 대리 등 세계 각국 대표가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작심하고' 국내외 인사들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개적으로 띄움으로써 대선 기간에 인권 문제가 중대 이슈로 부상할지 주목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올해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에 제출됐지만, 여야는 지난 9일 청원 심사 기한을 2024년까지 미루면서 사실상 법 제정 포기 뜻을 드러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도 답답함을 느껴 직접 언급한 것 아니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문 대통령 "여성의 안전이 곧 사회의 안전"

문 대통령은 여성폭력 추방주간(11월 25일~12월 1일)을 맞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여전히 폭력에 희생당하는 여성들이 있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지난 15일 스토킹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오피스텔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여성과 남성의 삶은 맞닿아 있다. 여성의 안전이 곧 사회의 안전”이라며 “이 간명한 진실을 위해 노력해 온 분들께 깊이 감사 드린다”고 했다. 인천 흉기난동 사건에 대한 경찰의 미흡한 대처가 ‘여경 혐오’ ‘젠더 폭력’으로 비화하자 ‘여성 보호’라는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며 논란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 참석을 위해 명동성당으로 향하던 중 공군 내 성추행과 조직적 2차 가해로 숨진 이예람 중사의 부친을 만났다. 문 대통령은 이 중사 부친이 “특검으로 사건을 다시 조사해 달라”고 하자 “잘 살펴보겠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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