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의 작은 마을은 어떻게 삼성을 움직였나

입력
2021.11.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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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삼성 유치 위해 인센티브 경쟁
한국 여당의원의 대규모 지원 약속 말뿐

"삼성전자가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한화 20조 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하기 전까지 이 지역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겁니다."

삼성전자가 24일 미국 내 두 번째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이 들어설 지역으로 텍사스주의 테일러시를 낙점하자, 이 지역 지방정부인 '윌리엄 카운티'의 빌 그라벨 판사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윌리엄 카운티의 최고 선출직 공무원인 그는 이번에 현지에서 삼성전자와의 협상을 주도한 인물로 꼽힌다. 그의 말처럼 테일러시는 텍사스 주 안에서도 인구 1만5,000명 수준의 소도시에 불과한데, 테일러시는 어떻게 쟁쟁한 후보들을 꺾고 삼성전자를 사로잡았을까.

실제 연초 외신을 통해 미국에 첨단 파운드리를 세울 거란 삼성전자의 계획이 공개됐을 당시만 해도 테일러시는 후보군으로 아예 거론되지도 않았다. 당시 삼성전자는 기존 파운드리 공장이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 외 뉴욕주 제네시 카운티, 애리조나 피닉스, 한국 등 4곳을 후보지로 검토 중이라는 공식입장을 냈다.

테일러시가 유력 후보로 급부상한 건 지난 7월이다. 당시 삼성전자가 테일러시의 지방정부인 테일러 독립교육구(ISD)에 파운드리 건설에 따른 세제 혜택 신청서를 낸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언론에 뒤늦게 등장했지만, 테일러시는 삼성전자를 유치하기 위해 연초부터 물밑에서 전방위 '구애 작전'을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라벨 판사에 따르면 테일러시는 지난 1월 지역 야구장에서 삼성 임원들을 초대해 맞춤형 유니폼을 선물하고 불꽃놀이와 함께 왜 테일러시가 돼야 하는지를 담은 영상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였다. 그라벨 판사는 "한국인과의 첫 협상이라 열심히 한국 문화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 인프라인 전력과 용수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음을 적극 내세웠다. 지난 2월 삼성전자의 오스틴 공장은 현지 한파로 1998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공장 가동을 멈췄는데, 테일러시는 끄덕없다는 것이다. 테일러시 등에 전력을 공급하는 지역 전력공사 사장은 연초 삼성전자 측을 만나 텍사스 한파에도 자사 전력 공급망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테일러시와 40㎞ 떨어진 곳에서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송수관 건설 계약을 캐나다 회사와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파격적인 세금 혜택은 결정적 한방이 됐다. 삼성전자는 첨단 반도체 공장을 세우는 대가로 20년 동안 10억 달러(1조 원)에 가까운 세금 감면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테일러시는 이를 웃도는 세금 감면(1조2,000억 원)을 약속했다. 전례없는 수준이지만 삼성전자 유치에 따른 혜택이 더 클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스틴시에서도 인센티브를 더 줘서라도 삼성전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쏟아졌지만, 사실상 모든 걸 삼성전자의 요구 수준에 맞춘 테일러시와는 게임이 안 됐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삼성전자가 처음엔 한국(경기도 평택)도 후보지로 검토 중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형식에 불과했을 거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투자 순위를 따질 때 한국은 미국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연초 여당의원들이 삼성이 미국 대신 한국에 공장을 짓게 하기 위해 대규모 혜택을 준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며 "정부가 약속한 반도체특별법도 통과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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