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청중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뛸 듯이 반가웠다. 코로나 이후 '서울시향의 퇴근길 토크 콘서트'는 수차례 공연이 연기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으며, 심지어 공연 하루 전 확진자로 인해 취소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어 왔었다. 음악과 인문학의 만남을 내건 이 시리즈는 그동안 건축, 우주, 나무, 신화 등의 주제를 발굴하며 음악 감상의 확장과 심화를 추구해 왔었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음악과 청년, 청춘에 귀 기울이다'로 잡았다. 작곡가들의 경력 초기라 할 20대에 작곡되었던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는데, 무대에서 자주 듣기 힘든 이 곡들은 미완의 시기에 아직 여물지 않은 기법이더라도 작곡가 특유의 영감과 스타일이 살아 있어 뜻깊었다.
공연의 밑그림은 그렸지만, 청년의 복잡한 세대 정체성을 음악과 어떻게 연결 짓느냐가 관건이었다. 성년이 되어 독립된 주체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희망부터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까지 청춘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대변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공연의 기획 단계부터 저서 '90년생이 온다'를 통해 한국사회에 MZ세대에 대한 본격적 관심과 통찰을 불러일으킨 임홍택 작가가 동참했다. 그와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누며 시벨리우스는 '음악적 애국주의'로, 스크리아빈은 '결핍, 창조의 동력'으로, 브리튼은 '행동하는 소수'로, 베베른은 '예기치 않은 죽음의 순간'으로 키워드를 잡아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특히 브리튼의 청춘시절에 대해 공들여 몰두했다.
벤저민 브리튼의 청년기엔 두 명의 중요한 인물이 등장했었다. 10대 시절부터 그의 작곡 선생님이었던 프랭크 브리지는 1차 세계대전을 몸소 경험하며 전쟁이 가져온 학살과 폭력의 위험성을 익히 절감했었다. 청년 브리튼은 선생님으로부터 작곡뿐만 아니라 비폭력과 평화에 대한 신념을 단단히 물려받으며 이렇게 선언한다. "브리지 선생님이 온화한 평화주의자라면 나는 그보다 더 나아가 행동하는 적극적 평화주의자로 거듭나고 싶다." 그가 23세 때 창작한 관현악곡인 '우리 사냥의 조상들(Our Hunting Father)'은 15세에 쓴 수필을 기반으로 하는데, 숲속에 울려 퍼지는 사냥꾼 총의 포성과 덫에 발목이 잘린 동물들의 절규를 처절히 담고 있다. 내성화된 폭력을 일깨우며 사냥을 무자비한 살생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행동하는 적극적 평화주의자로서 브리튼의 면모는 2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거부하며 더더욱 자명해졌다. 급기야 병역을 기피했다는 죄목으로 영국 법정에 기소를 당하기도 한다. 이때 그의 청년기 두 번째 중요한 인물인 테너 피터 피어스(Peter Pears)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살상 행위에 동참할 수 없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함께 이행했고, 그 뒤로도 평생 동안 음악 동료이자 연인으로 동행한다. 동성애가 아직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았던 시절, 온갖 몰이해를 극복하며 장장 35년이나 사랑을 이어갔던 것이다.
청년 브리튼은 이처럼 성적 소수자란 불리한 정체성을 마다치 않으며 사회에 내성화된 폭력과 치열히 투쟁했었다. 브리튼의 음악세계를 한국사회의 청년과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까. 임 작가는 청중들에게 ‘배타적 혐오’란 화두를 던져주며 청춘의 또 다른 통찰을 일깨웠다. "한국사회엔 내가 지지하지 않는 무엇, 혹은 나와 반대되는 무엇에 대한 혐오가 만연합니다. 남과 여, 한국인과 외국인, 청년과 기성세대, 여당과 야당 같은 것들이죠. 청년세대는 그 반목에 더 빠르게 노출되어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혐오사회의 저자 캐럴린 엠케의 주장처럼 무언가 제대로 알고 있다면 미워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특정 그룹을 혐오한다는 것은 그만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