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 도서 비중이 높았던 외서 분야에서 독일 역사학자 위르겐 오스터함멜의 '대번혁', 러시아 영화 거장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시간의 각인'이 번역·출간된 것을 반기는 심사위원이 많았다. 한국출판문화상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는 번역가의 이름도 또다시 거론됐다. 노승영 번역가의 '시간과 물에 대하여', 지난해 번역 부문 수상자인 김승진 번역가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 번역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과학 교양서 출간이 늘고 관련 전문 번역가가 늘면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고래가 가는 곳' 등은 가독성이 특히 뛰어나다는 중론이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의학 전문 번역가인 강병철 번역가가 참여한 '자폐의 모든 역사'는 원저와 번역이 모두 훌륭하다는 평가다.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는 활발하게 인용되는 중요한 사상가인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저작이라는 점에서 추천됐다. 다만 인문사회과학이 위기를 맞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론적 깊이가 있는 인문사회과학서를 소화할 번역자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왔다.
▦대변혁(총 3권)
위르겐 오스터함멜 지음·박종일 옮김·한길사 발행
독일 역사학자인 저자는 19세기를 세계사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이 시기 동서양의 '대변혁'을 짚었다. 저자에 따르면 박물관·영화·사진 등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방식과 생각은 모두 이 시기에 등장했다. 지역마다 독립적으로 전개되던 역사가 하나로 통합된 시기이기도 하다.
▦시간의 각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지음·라승도 옮김·곰출판 발행
러시아의 영화감독이자 영화이론가인 저자가 영화와 예술을 주제로 쓴 책이다. 영화에 대한 철학과 함께 예술가로서 자기 자신과 나아가 세계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강조한다. 1991년 독일어 번역본을 중역한 '봉인된 시간'이 출간됐지만 저자의 러시아어 원고 번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문순표 옮김·오월의봄 발행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인용되는 철학자이자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인 저자는 더 나은 인간 존재를 위한 '인간공학적 전환'을 주장한다. '인간은 그저 사는 게 아니라 수행하는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끌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역사 속 온갖 수행을 소환하고 철학적 분석을 가미한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지음·노승영 옮김·북하우스 발행
기후변화의 현실적 위기를 직관적으로 전하기 위해 아이슬란드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저자가 사라진 것과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허구의 이야기와 역사 이야기를 엮어 전 지구적 위기와 인류의 해야 할 일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 강렬한 논픽션이다.
▦물은 H₂O인가
장하석 지음·전대호 옮김·김영사 발행
과학사·과학철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저자가 물과 관련한 과학지식을 역사적·철학적으로 재조명했다. 현대 과학은 상식으로 통하는 '물=H₂O'라는 등식의 진리성에도 의문을 던진다. 과학철학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저서에 수여하는 '페르난두 질 과학철학 국제상(2013년)'을 받았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존 돈반·캐런 저커 지음·강병철 옮김·꿈꿀자유 발행
자폐인을 사회에 부담만 주는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했던 사회는 지난 80년간 자폐성향이 인간 정신에 내재된 특성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자폐인과 가족의 희생의 역사와 지극한 사랑, 사회 변화의 움직임을 조명했다. 과학 문헌과 신문 기사, 자폐 자녀 부모와의 인터뷰 등을 엮었다.
▦커리어 그리고 가정
클라우디아 골딘 지음·김승진 옮김·생각의힘 발행
노골적 성차별이 사라지고 있는데도 왜 성별 소득격차는 사라지지 않을까.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인 저자는 원인을 경제 성장 문제에서 찾았다. 시간 외 근무를 밥 먹듯이 해야 임금이 높은 '탐욕스러운 일'이 문제다. 성별 소득 격차를 해소하려면 노동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이민아 옮김·디플롯 발행
적자생존은 틀렸다.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였다. 침팬지보다 보노보가 더 성공적으로 번식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신체적으로 우월한 네안데르탈인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끝까지 생존했을까. 저자들은 이에 대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답을 내놓는다.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케이트 브라운 지음·우동현 옮김·푸른역사 발행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핵 재난인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의 환경적·의학적 영향을 정확히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다.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방대한 문서고 자료와 구술·면담 자료를 토대로 참사의 실상을 밝힌다. 이런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지침서다.
▦고래가 가는 곳
리베카 긱스 지음·배동근 옮김·바다출판사 발행
지구상 최대의 생물, 고래에 대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추적한다.저자는 최신 과학 연구의 새로운 고래 이야기를 수집하고 고래가 품은 지구의 비밀, 인간과 고래가 함께해 온 역사와 문화를 쫓는다. 고래를 통해 결국 '인간과 자연'이라는 더 큰 주제를 말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