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후보 선거대책본부에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합류할 지 말지 여부가 대선판의 뜨거운 관심사다. 김 전 위원장의 거취가 관심인 건 그가 정치권에서 선거 판세를 좌우할 ‘킹메이커’로 꼽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완고하고, 때론 심술궂게 보이는, 심지어 당적을 수시로 바꿔 ‘박쥐’라는 욕을 먹기도 하는 노인이 왜 천변만화의 정치판에서 여전히 킹메이커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 서양 중세의 킹메이커는 왕이 될 충분한 실력을 갖췄으나, 계승서열 등에서 밀려 직접 나서는 대신 다른 사람을 왕으로 내세운 뒤 실권을 행사하는 강력한 제후를 가리켰다. 반면 요즘은 정치력이든, 빼어난 선거전략이든 자신이 갖춘 정치적 자산을 동원해 대선 등에서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인물을 통칭한다. 그런데 여권의 이해찬 전 대표가 정치력을 갖춘 선거전략가로서 킹메이커로 꼽히는 것과 달리, 김 전 위원장은 ‘가치의 보유자’로서 킹메이커 역할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 사실 그는 정당형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경세철학을 현실에 관철시키기 위해 되레 정치세력을 활용해온 실천적 이론가에 가깝다. 그의 경세철학은 영미식 자유시장경제와 국가 주도 성장전략에 입각해 ‘한강의 기적’을 이끈 과거 서강학파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게 특색이다. 구체적으로는 1970년 전후 독일 유학파답게 자유방임형 시스템보다 공동체 가치를 중시하는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을 추구한다.
▦ 1977년 의료보험제도 제안, 1987년 개정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은 일 등이 그의 대표적 실천 행보다. 이후 진보와 보수를 수시로 오가는 당적 변경 행보에도 재벌 개혁, 양극화 완화 같은 경제민주화 시책만은 고집스럽게 유지했고, 그 행보가 2000년대 이후 ‘시대정신’과 맞닿으면서 절실한 사회적 가치의 견인차로서 자리매김한 셈이다. 여전히 반문(反文) 말고는 내세울 만한 경세철학이 보이지 않는 윤 후보나 국민의힘이다. 그와 결별한다면, 변혁 없는 ‘도로 새누리당’ 이미지를 어떻게 벗을지부터 절박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