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번아웃(burn out·소진)' 상태에 빠진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주 4일 근무제 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인력 확충을 통해 절대적인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주 4일제 연구용역 발표' 행사에서 나순자 보건노조 위원장은 "지난 9월 총파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가장 강한 의제가 바로 주 4일제 도입이었다"며 "불규칙한 교대제에서 밤 근무 후 충분한 수면과 휴식 시간과 개인의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위해선 총 노동일과 노동시간을 반드시 줄여가야만 한다"고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대선국면에서 주 4일제 도입을 의제화하고 내년 3월에는 일부 병원을 대상으로 주 4일제 시범사업을 실시하자고 정부에 제안하기로 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지난 9·2 노정합의를 통해 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수 제도화와 교대제 개선에 나서기로 했는데, 이는 인력 확충과 근로시간 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과거 주 6일제에서 5일제로 바뀔 때 금융산업과 보건의료산업부터 변화가 시작됐는데 코로나19로 가장 타격이 컸던 보건의료산업에 먼저 주 4일제를 도입하는 것은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정치권 인사들도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내비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서면 축사를 통해 "교대근무가 많은 의료현장에서 주 4일제 논의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며 "보건의료인의 기본 권리를 보장하고,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보건의료 서비스 개선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도 "국제노동기구(ILO)도 24시간 서비스를 해야 하는 보건의료 부문에서 존엄한 노동시간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며 "보건의료 사업장, 2교대 사업장, 여성밀집 사업장 등에 시범실시 후 결과를 바탕으로 전 국민 주 4일제 실시를 앞당기겠다"고 했다.
발제를 맡은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4조 3교대제를 5조 3교대제로 바꿀 경우 휴일이 연간 91일에서 146일로 늘어나는데, 주간 기준 휴무일은 2.8일"이라며 "인력 충원이 불가피하지만 전반적인 노동시간 감소와 자유로운 휴가 사용 보장을 위해선 5조 3교대제 도입이 가장 이상적인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의료 현장의 우려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조문숙 대한간호협회 부회장은 "대부분이 교대근무자·여성인 병원 간호사들을 우선으로 주 4일제를 도입해야 한다"면서도 "인력 확보가 안 된 상태에서 이를 시행하면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가 오히려 늘 수도 있어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상혁 녹색병원장은 "노동시간이 가장 긴 지방의 공공 또는 민간의료기관이 우선 검토 대상이 되어야 하며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소위에서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처우 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이 처음 논의됐으나 진전은 없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간호법 제정의 필요성, 코로나19 상황에서 간호 인력이 겪는 어려움 등은 공감하지만 의사단체 등의 강력한 반대 등 직역 간 이견이 큰 만큼 정부가 이견을 조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