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전력산업 등 한국 근현대 문화 조명… 기술사회 분석도

입력
2021.11.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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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 예심] 저술 학술 부문 10종

한국 사회의 경제 현실과 정책 추진에 따른 근현대 문화 변천사를 살펴본 책이 주목받았다. '한국주택 유전자1·2' '한국 근현대 전력산업사'가 대표적이다. 사학계의 논쟁을 이끈 임지현 서강대 교수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학술서로서 중요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피지털 커먼즈'와 '호모 파베르의 미래'는 디지털 기술의 진보를 거듭하는 현시점에 꼭 필요한 책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김영민 서울대 교수의 '중국정치사상사'는 2017년 영문판으로 먼저 출간된 책이지만 문체를 다듬고 큰 폭으로 수정·집필해 번역본이라기보다 새 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조영헌 고려대 교수의 '대운하 시대 1415~1784'는 전작 '대운하와 중국상인'(2011)과 결은 비슷하나 이야기가 더 커졌다는 평가다. '수용소와 음악' '신동원 교수의 한국 과학문명사 강의'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도 의미 있는 저작이라는 의견이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올해 눈에 띄는 중국 현대사 학술서가 없는 점은 아쉬움으로 꼽혔다.

▦한국주택 유전자1·2

박철수 지음·마티 발행

일제강점기 관사에서 대단지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주택의 역사를 통해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한국인은 어떤 경로와 정책 결정으로 아파트로 수렴하게 됐는지 풍부한 문헌·시각 자료로 밝힌다. 시각 자료의 80%가량이 일반 단행본으로는 최초로 공개되는 이미지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임지현 지음·휴머니스트 발행

자신을 희생자로 포장하는 가해자와 희생자의 기억을 '세습'하는 피해자 간의 21세기 지구적 기억 전쟁의 복잡한 풍경을 포착했다. 누가 더 '우월한' 희생자인지 다투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민족 간 갈등만 부추긴다. 기억 연구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영어판 출간을 앞두고 있다.

▦피지털 커먼즈

이광석 지음·갈무리 발행

디지털 기술 세계 확대에 따른 '피지털(phygital)'계의 등장에 주목했다. '피지컬(physical·물질)'과 '디지털(digital·비물질)'을 합친 피지털은 공간 지각이 뒤섞인 혼합 현실을 지칭한다. 플랫폼 자본의 포획에 맞선 대안 실천으로 커먼즈(공통장) 운동을 제안한다.

▦수용소와 음악

이경분 지음·성균관대학교 출판부 발행

독일에서 '나치 시기 독일의 망명 음악과 문학'이라는 논문으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여러 수용소의 음악 활동에 주목해 왔다. 극단적 처지에 내몰린 수용소 사람들에게 음악은 수감 생활의 무료를 달래고 처참한 지옥 바깥에 자유로운 세상이 있음을 전하는 메시지였다.

▦대운하 시대 1415~1784

조영헌 지음·민음사 발행

중국의 '명·청 시대'를 '대운하 시대'로 명명하고 유럽 '대항해 시대'에 버금가는 세계사적 시간으로 끌어올렸다. 중국의 15~18세기는 약 1,800㎞에 이르는 대운하를 통해 물자와 인력을 나르며 번영을 누렸지만 '바다 공포증'을 강화해 제국의 쇠퇴를 불러온 역설의 시대였다.

▦중국정치사상사

김영민 지음·사회평론아카데미 발행

스타 칼럼니스트 김영민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의 국내 첫 학술서다. 2017년 집필해 호평을 얻은 영문판(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을 우리말로 옮겼다. 한국인이 쓴 첫 중국정치사상사로, 미시적 분석과 거시적 서사를 유려하게 결합했다.

▦호모 파베르의 미래

손화철 지음·아카넷 발행

포스트휴먼 시대의 기술사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았다. 기술은 인간의 통제와 기대, 예상과 상상을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현대 기술철학 이론의 흐름을 살피고, 도구를 만드는 인간 '호모 파베르(Homo Faber)'의 미래를 전망하면서 인류의 능동적 역할과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한국 근현대 전력산업사

오진석 지음·푸른역사 발행

1898년 한성전기가 설립된 때부터 1961년 전기 3사가 한국전력주식회사로 통합될 때까지의 60여 년에 걸친 한국 전력산업의 역사를 살핀다. 한국 전력산업사를 다룬 논문·학술서가 드문 현실에서 일본과 미국 등지의 박물관 등으로 발품을 판 저자의 성실성이 책의 가치를 더한다.

▦신동원 교수의 한국 과학문명사 강의

신동원 지음·책과함께 발행

대표적인 한국과학사 연구자 신동원 전북대 교수가 2,000여 년의 한국 과학문명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과학기술은 한국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었다. 한국 과학문명의 흐름을 하늘, 땅, 자연, 몸이라는 4가지 주제별로 살펴, 발전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했다.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최시현 지음·창비 발행

남편과 자녀에게 충실한 가정경제 관리자가 되기 위해 부동산에 뛰어든 중산층 여성의 주거생애사를 분석했다. 계급 상승의 욕망과 젠더 권력의 격전지로서 부동산의 작동 원리를 해명하고 '복부인'이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여성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가해지는 정형화된 비난을 해체한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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