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직언 "삼성전자도 기술 잃으면 찬밥 신세 된다"

입력
2021.11.23 16:28

권오현 삼성전자 전 회장(현 상임고문)이 삼성전자가 반도체 기술력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미국에서 '찬밥 신세'를 당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다만 기술만 있으면 언제든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만큼 '기술 초격차'를 주문했다.

2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권 고문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창립 30주년 특별 인터뷰에서 "미국이 삼성전자나 (대만의) TSMC를 반도체 회의에 초대하거나 미국 내 팹(공장) 투자를 주문하는 것은 삼성이나 TSMC의 기술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기술을 잃어버리면 찬밥 신세가 될 것"이라며 기술 리더십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고문은 반도체산업협회 제6대(2008~2011년) 협회장으로서 협회 특별 인터뷰에 참여했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국들의 '반도체 자립화' 움직임에 대해선 "우리나라가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도체는 국제 분업이 잘 이뤄져 왔고 우리나라는 반도체 제조 기술이 강하다"며 "주요 국가에서 반도체 자립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런 분업화가 쉽게 흔들리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실적으로 이들 나라가 우리나라와의 기술 격차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만큼 기술력을 앞세워 전략적으로 대응하면 새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반도체산업협회 30년사에는 삼성전자가 약 40년 전 네덜란드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업체 ASML 인수를 추진했다는 후일담도 담겼다. ASML은 EUV를 이용해 5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회로를 새겨넣을 수 있는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전 세계의 유일한 업체다.

초대 협회장(1992~1997)을 지낸 김광호(81)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1982년 필립스가 삼성전자에 ASML(당시 ASM) 인수를 제안해 현지 실사를 위해 미국 본사를 찾았지만 당시 ASML은 당시 업력이 짧았고, 삼성도 사정이 넉넉지 않아 결국 인수를 포기해 안타까움이 남기도 한다"고 회고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기준 이 회사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 갈등 속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10대 협회장을 지낸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국가가 나서서 외교 등으로 기회를 만들고 컨트롤타워 같은 기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반도체를 국가 안보 문제로 여기는 만큼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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