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 여성 최모씨는 2개월 전 갑자기 발생한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10여 년 전 협심증으로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을 시행했던 최씨는 처음에는 불안정형 협심증 또는 심근경색이 의심됐다.
하지만 혈액검사, 심장 초음파 검사,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결과, ‘급성 대동맥 박리’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늦지 않게 병원을 방문했고 신속히 진단해 찢어진 혈관을 인조 혈관으로 바꾸는 응급 개흉 수술을 받고 회복할 수 있었다.
최씨에게 발생한 ‘대동맥 박리(剝離)’는 대동맥 내막이 국소적으로 찢어지면서 심장에서 뿜어져 나가는 혈류가 그 사이를 파고들어 대동맥 벽의 중막이 길게 찢어지고 혈액이 흐르는 새로운 틈새가 만들어지는 질환이다.
김혁 한양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대동맥 박리는 극심한 가슴 통증 때문에 심근경색으로 자주 오인된다"며 "1시간 지날 때마다 사망률이 1%씩 높아지는 매우 치명적인 병”이라고 했다.
나무는 뿌리에서 큰 줄기가 나와 여러 작은 줄기로 영양분을 공급한다. 나무의 큰 줄기에 해당하는 것이 대(大)동맥이다.
지름이 3㎝ 내외인 대동맥은 심장에서 시작해 머리(상행 대동맥)-가슴(하행 흉부 대동맥)-배(복부 대동맥)를 지나 양다리의 동맥으로 나뉜다.
대동맥은 안쪽에 내막, 가운데에 근육으로 이뤄진 중막, 바깥쪽에 외막이 있는 3개의 막으로 둘러싸인 튼튼한 관이다.
단단한 상수도 파이프도 시간이 지나면 녹슬고 막히듯이 튼튼한 대동맥도 노화되면서 막히거나 늘어나고 찢겨지기도 한다.
이렇게 대동맥이 찢어지는 것을 대동맥 박리라고 한다. 박리(剝離)라는 말 그대로 대동맥이 사과껍질처럼 벗겨지는데 안쪽부터 찢어진다.
3개 층으로 이뤄진 대동맥의 벽이 안쪽에서 내막이 파열돼 중막으로 피가 흐르는 상태가 된 외막만 남아 있는 상태가 된다.
대동맥 박리가 생긴 뒤 2주까지를 급성이라고 하고 그 후를 만성이라고 하는데, 드물게는 아프지 않고 지내다가 박리된 대동맥이 늘어나 병원을 찾기도 한다.
대동맥 내막이 찢어지는 급성 대동맥 박리는 발생 직후 30~40%가 즉시 사망한다. 특히 상행 대동맥을 침범한 경우 병원에 도착하더라도 응급 수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이틀 이내 60%가 사망하고, 생존 이후 한 달 이내 90% 이상이 목숨을 잃는 매우 위험한 질환이다.
대동맥 박리를 일으키는 주원인이 고혈압이다. 환자의 70~90%에서 고혈압이 동반된다. 고혈압과 노화 등으로 퇴행성 변화가 오거나, 마르판 증후군ㆍ이첨 대동맥 판막 등 선천적 요인으로 대동맥 벽이 약해졌거나, 대동맥 중막 변성이 생긴 낭성 중층 괴사, 흉부 외상 등이 원인일 수 있다.
대동맥 박리의 가장 큰 원인은 고혈압이다. 대동맥 박리 환자의 80%에서 고혈압이 동반된다. 또한 흡연ㆍ당뇨병ㆍ이상지질혈증도 원인이다.
이 밖에 비만ㆍ고령ㆍ동맥염(타카야수병, 거대세포증) 등이 있다. 선천적 질환으로 이첨 대동맥 판막, 대동맥축착증과 유전 질환으로는 마르판증후군, 엘러스-단로스증후군 등이 있다.
나이 들면서 발병 위험이 높아지며, 남성이 여성보다 2배 많이 발생한다. 젊은 나이에 발병했다면 유전이나 선천적인 원인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
대동맥 박리가 생기면 찢어질 듯한 극심한 가슴 통증이 갑자기 시작된다. 조상호 강동경희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대동맥 박리가 상행 대동맥에 발생하면 가슴 쪽, 하행 대동맥에서 발생하면 어깨뼈 부위에서 주로 통증이 발생한다”고 했다.
대동맥 박리 환자 대부분은 자신이 일평생 경험한 가장 심한 통증으로 꼽는다. 칼로 찌르는 것 같거나 심지어 도끼로 찍는 듯한 아주 심한 통증을 느낀다.
상행 대동맥을 침범하면 경동맥이 막힐 수 있고, 이로 인해 뇌 혈류 이상이 생기면 몸 한쪽 감각이 없어지거나 마비가 생기는 등 신경학적 이상이 초래된다.
환자의 80~90%에서 고혈압이 있지만 간혹 대동맥 파열이 발생해 심장이 눌리거나(심낭압전), 대동맥 판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혈액이 심장 쪽으로 역류해 급성 심부전으로 진행되며 저혈압이 생기기도 한다.
하행 대동맥을 침범하면 척수신경으로 가는 혈류를 차단해 하반신 마비, 장쪽 혈관이 차단되면 복통 등이 나타난다. 통증은 처음에는 매우 격심하지만 점점 나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통증 위치가 변하는 것은 대동맥 박리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뜻하므로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상행 대동맥 박리는 대동맥 파열로 인한 급사 위험이 높아 초기에 수술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행 대동맥 박리는 파열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분지 혈관이 많아 수술 후 후유증 위험이 크므로 내과적 치료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초기 내과적 치료를 시행하다가 주요 장기 손상이 되거나, 파열이 임박하거나, 분지 혈관 혈류가 저하되면 하행 대동맥 박리일 때도 수술이나 혈관 내 스텐트 삽입술을 시행한다.
수술 목표는 박리 과정이 아래쪽이나 위쪽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고, 찢어진 내막 부위를 포함한 대동맥 부위를 인조 혈관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조상호 교수는 “급성 대동맥 박리 수술 사망률과 치명적 합병증 발생 빈도는 다른 어떤 수술보다 크게 높다”며 “이는 대부분 수술하기 전에 환자 상태가 매우 불량하고 수술 자체도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술 장비와 재료, 술기(術技), 대동맥 응급 질환 치료 시스템 발전으로 상행 대동맥 박리 수술 성적이 개선되면서 수술 후 사망률이 5~20%로 낮아졌다.
대동맥 박리를 예방하는 방법은 아직까지 확인된 것이 없다. 하지만 금연과 함께 고혈압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마르판 증후군 같은 유전성 결체 조직 질환 또는 이엽성 대동맥 판막증을 앓는 고위험군이라면 조직 일부가 선천적으로 약해진 상태이므로 혈압이 높으면 대동맥이 늘어나다가 어느 한 순간 대동맥 박리로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세밀한 추적 관리를 통해 대동맥 확장 여부를 평가하고, 박리가 생기기 전에 치료하기 위해 담당 의사와 정기적으로 상담하는 것이 좋다.
-극심한 통증
-의식장애, 실신, 뇌졸중
-하반신 마비, 복통
-호흡곤란
-기침, 구토
-불안
-무증상(만성 대동맥 박리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