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앞에 남은 책무

입력
2021.11.22 18:00
26면
이재명표 추가 재난지원금 지급 논란
청와대 ‘부작위’ 탓 국정혼란만 증폭
남은 임기 국가원수 결정·책임 다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꺼내 든 전 국민 추가 재난지원금 논란은 이 후보 스스로 추진을 철회함으로써 결국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20여 일 동안 국정은 혼미를 거듭했고, 그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국민은 결코 편치 않았다. 자기 당 후보의 주장이라는 이유 하나로, 또 그게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로, 최소한의 타당한 논리조차 없이 떼거지로 나서 정부에 무작정 돈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던 여당 정치인들의 딱한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당 정치인들이야 어쨌든 이 후보 등에 올라탄 셈이다. 그러니 재집권을 위해 악도 쓰고 떼도 쓰는 것일 테고,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국정이 요동칠 때 중심을 잡아야 할 대통령과 청와대의 부작위(不作爲)다. 부작위란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추가 재난지원금 논란과정에서 마땅히 기대되는 조치를 서둘지 않음으로써 국정혼란의 장기화를 초래했다.

이번 논란과정에서 청와대가 처음 입장을 낸 건 지난 9일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물론, 김부겸 총리까지 이미 반대의사를 표명했음에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방역지원금으로 이름을 바꾼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진 입장을 공식화하 면서 당정 갈등이 본격화하던 시점이었다. 이때 청와대 메시지는 “당정이 의견을 조율하면서 현명한 결론을 도출하기를 바란다”는 게 고작이었다.

두 번째 입장은 지난 16일 나왔다. 홍 부총리는 금년 초과세수를 내년 집행을 위해 유예하는 게 법적으로 어렵다며 재차 반대입장을 고수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기재부 해체”까지 언급했고, 윤 원내대표는 국정조사를 언급하며 격앙된 감정을 드러냈다. 시선이 청와대로 향했다. 그러자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라디오에 나와 “청와대가 조정할 사안이 아니며, 공은 국회로 넘어가 있으니 여야가 논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문 대통령의 공식 입장이 나온 건 지난 2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다. 그사이 이 후보는 18일 제 풀에 쓰러지듯 추가 재난지원금 추진을 철회했으나, 기재부와는 돌덩이 같은 앙금을 남기게 됐다. 문 대통령은 “재난지원금 문제에 관해 내각의 판단을 신뢰한다”고 했다. 지난 10월 말 이 후보가 전 국민 추가 재난지원금 추진을 구체화하며 볼썽사나운 국정혼란이 빚어진 지 20여 일 만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대통령 입장이 나온 후 “행정부 수반인 문 대통령이 내각의 설명(입장)과 다른 결을 가질 순 없다”며 대통령이 진작부터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부정적이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대통령 입장 표명이 늦은 배경을 “이 후보가 정부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고 본인의 선택과 결단으로 정리해 주길” 기다린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청와대의 이런 설명은 이 후보의 결단까지 빚어진 20일간의 국정혼란은 별문제가 아니라는 식이다.

하지만 진작 입장이 정해졌다면 대통령은 애매한 태도로 상황을 방관할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논란과 갈등의 조기 진화에 나섰어야 했다. 국정을 둘러싼 모든 이해충돌과 관련해 제때 판단하고, 결정하며, 책임을 져야 할 책무가 바로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다.

국정 책임자의 결정 지연이 빚은 비극으로 세월호 사건 같은 일을 재론하고 싶지는 않다. 정부 교체기를 맞아 대통령이 판단과 결단을 유보하거나 지연하는 일이 되풀이되면 나라는 레임덕과 함께 표류하기 십상이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정책이나 외교현안 등 주요 미결 정책현안들에 대해 제때 결단하고 책임지는 국가원수로서의 책무를 결코 해태하지 않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