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주요국 조용한 군비 경쟁 가속화… 지역 전체가 '화약고'

입력
2021.11.22 19:00
17면
中, 올해 군사예산 2000억 달러 이상... 매년 증가
한국·일본·인도 등 인접국들도 '군비 증강' 가속화
"군사 긴장 고조" 우려 vs "전쟁 억제 역할" 반론도


“아시아 주요 국가들 간 전쟁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는 잠재적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
맬컴 데이비스 호주전략정책연구소 선임 애널리스트

아시아 지역 강국들끼리의 ‘조용한 군비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역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중국과 대만 간 갈등이지만, 감정의 골이 깊은 ‘수면 아래’의 대결 구도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이상적 해법은 상호 실천이 담보된 군축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인 터라,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화약 덩어리를 등에 짊어진 채 ‘치킨 게임 속 안보 딜레마’를 풀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시아 전쟁 위기의 핵심으로는 중국이 꼽힌다. 미국 CNN방송은 22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통치 기간 중국군이 급속도로 확대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실제로 중국의 군사 예산은 올해 2,000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내년 미국 국방예산 7,400억 달러(예상치)와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중국이 이미 미국과의 군사력 기술 격차를 해소하고 있다’는 분석은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이 표방하는 힘의 외교, 이른바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 정책도 주변국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CNN은 시 주석이 지난해 7월 중국 공산당 100주년 연설에서 “중국에 대항하는 국가는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역내 불안정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군사적 자신감에서 비롯된 팽창주의 야심을 노골화했다는 얘기다.

인접국인 한국과 일본도 ‘군사력 증강’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총선을 앞두고 “일본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선으로 확충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치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CNN은 이를 거론하면서 “한국도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실험에 성공하고, 2033년 배치를 목표로 항공모함 건조 채비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리오넬 패튼 스위스 웹스터대학 인도·태평양 전문가는 “한국이 항모 건조에 나서면 일본이 ‘국가적 자존심’을 꺼내 들 수 있다”고 점쳤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적 경쟁 관계를 지속해 왔던 만큼, 한미일 동맹 속에서 한일 간 군비 경쟁도 심화할 것이라는 의미다.

인도 역시 눈여겨볼 변수다. 히말라야산맥 인근 국경 분쟁으로 중국과 인도가 척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문제를 제외하면, 아시아 지역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가장 큰 두 나라는 중국과 인도라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전례도 없지 않다. 지난해 6월 중국군과 인도군이 분쟁 지역인 갈완 계곡에서 무력 충돌을 빚어 20여 명이 숨진 게 대표적이다. 당시 전면전으로 비화하진 않았으나, 지금도 양국이 국경 지역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정황은 속속 포착되고 있다.

중국과 인도 간 긴장 고조로 다급해지는 건 파키스탄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간 카슈미르 영유권 다툼은 계속되고 있는 상태다. 아르잔 타라포레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교수는 “인도가 군사력을 증강하면서도 파키스탄을 자극하지 않을 방법을 찾을 것 같지는 않다”며 “파키스탄은 군사적 위협을 타개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질적 핵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국지적 영토 분쟁에서 핵무기를 쓰진 못하겠지만, 재래식 무기 확충 움직임을 가속화할 현실적 가능성만큼은 충분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문제는 경쟁 일변도 군비 확충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맬컴 데이비스 호주전략정책연구소 선임 애널리스트는 “역내 군비 경쟁은 아시아를 더 위험하게 만들 것으로 예측되나, 각국의 선택권은 많지 않다”고 CNN에 말했다.

반면, 전쟁의 공포가 오히려 ‘불안한 균형’을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타라포레 교수는 “(선제) 공격을 하는 국가도 (반격을) 두려워할 수 있다”며 “(군비 경쟁이) 전쟁 유발보다는 억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피터 레이튼 그리피스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0년 내 아시아 지역의 주요 강대국 간 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긴 하다”면서도 “중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경쟁국들의 경제·무역 상호 의존이 누군가의 군사 행동을 저지하는 데 도움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