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불장난

입력
2021.11.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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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미·중 지도자가 화상으로 대화를 나눴다. 매체들은 중국 지도자가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면 죽는다"는 등, 강경한 태도였다고 보도했다. 중국 기사를 찾아보니 역시 이 말을 대서특필하며, '완화자필자분(玩火者必自焚)'이라고 썼다. "불장난하면 제 불에 타죽게 되리라"는 뜻인데, 이 말의 출처는 '춘추좌전(春秋左傳)'이다.

석작은 위나라의 원로 대신으로 반듯한 사람이었다. 그 아들 석후는 위나라 장공의 애첩이 낳은 서자 주우와 어울려 다니며 못된 짓을 일삼았다. 주우는 호전적이고 포악했다. 일찌감치 그를 간파한 석작은 아들을 타이르고 매질도 하며 멀리하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보다 못해 장공에게 주우를 단속하라고 했지만 마이동풍. 지친 석작은 아예 벼슬에서 물러난다.

장공이 죽고 큰아들이 즉위해서 환공이 되었다. 주우와 석후는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역모를 준비했다. 마침내 BC 719년, 그들은 함께 이복형 환공을 시해하고 임금이 되었다. 그런데 여론이 따르지 않았다. 조정 분위기도 백성들 반응도 싸늘하기만 했다.

위나라와 멀지 않은 노나라도 주우의 쿠데타 소식에 조정이 분주해졌다. 이때 대부 중중(衆仲)이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놨다.

"대저 무력은 불과 같아서 조심하지 않으면 도리어 자신을 불사르게 됩니다. 위나라 주우는 그의 임금을 죽이고 백성을 잔학하게 부립니다. 선덕을 닦지 않고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니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중국이 말한 '불장난'은 '무력' 혹은 '전쟁'을 비유하는데, 저작권은 중중에게 있는 셈이다. 한편, 주우는 석후를 시켜 아버지 석작에게 어떻게 하면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는지 물어보도록 했는데 의외로 수월하게 해답을 얻었다.

"주우가 제후로 인정받으려면 주나라 천자의 책봉을 받아야 한다. 지금 진나라 제후가 천자와 친밀하니 그를 찾아가 부탁하면 된다. 천자의 책봉을 받으면 민심을 붙잡을 수 있다." 이 말에 들뜬 주우와 석후는 진나라로 출발했다.

석작은 한발 먼저 진나라에 밀사를 보내 두 사람은 역적이니 그들이 당도하면 즉시 체포하도록 부탁했다. 진나라 역시 정세 분석을 통해 쿠데타 정권을 버리기로 했다. 진나라에 들어선 주우와 석후는 바로 체포되었다. 석작이 복귀한 위나라 조정은 바로 사람을 보내 주우를 처형했다. 그리고 석작은 가신을 보내 아들을 죽였다. 자식을 죽여야 했던 아버지의 비애가 느껴진다.

당시 사람들은 석작을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 칭송했다. '정의'를 위해서 피붙이도 죽였다는 말이다. 전체 고사를 훑어보니 묘하게도 '불장난'은 죽음으로 끝난다. 작금의 보도 내용과 겹쳐서 보면 전면전을 예고하는 노골적인 으름장 같기도 하다.

불장난과 전쟁을 연상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고전이 '손자병법'이다. 총 13편으로 현행본에서는 간첩의 활용을 다룬 '용간(用間)'이 마지막 편이다. 그런데 1972년에 출토된 전국시대 '죽간(竹簡) 손자병법'에는 마지막이 '화공(火攻)'이고, '용간'은 12편에 들어 있다.

'죽간본'의 순서로 생각해보면, 손자가 결론에서 강조한 것은 "전쟁은 불장난"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실제로 '화공'의 뒷부분은 '불'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국가는 한 번 망하면 끝이다"와 "현명한 리더는 전쟁을 경계한다"가 요지이다.

그래서인지 돌연 미·중이 남들 앞에서는 으르렁대고 뒤로는 사이좋게 지내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범부인 필자가 아는 것을 저들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