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동갑내기 청년들이 만든 '낡은 집'... 낙후된 골목이 살아났다

입력
2021.11.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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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화제 '웻에버', '로텐바움' 운영하는 '27club'
93년생 동갑내기 두 친구가 결성
동네의 생기 찾는 '민간 도시재생' 지향

어떤 숙소는 잠시 몸을 누이는 장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숙소 자체가 목적지가 된다. 여행지가 된다. 부산과 전주 후미진 골목에 자리한 '웻에버', '로텐바움'은 그런 숙소다. 5성급 화려한 호텔이나 먹거리, 놀거리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리조트도 아니다. 1980년대에 지어진 낡은 주택을 고쳤을 뿐이다. 그것도 '새 집' 같아 보이게 말고, 더 오래된 1960~1970년대 집처럼 보이게끔 수리했다.

숙소는 사람이 머물다 방금 자리를 뜬 것 같은 인적이 있다. 책장에 책이 꽂혀 있고, 옷장에는 조끼가 걸려 있다. LP판도 쌓여 있다. 영화 세트장 같은 숙소를 만든 주인공은 93년생 동갑내기 친구 한규철, 손태엽씨가 결성한 '27club(27클럽)'이다. 17일 한국일보에서 만난 이들은 "깔끔한 숙소보다는 누군가 정말 살았을 것 같은 집, 하나의 세계를 구현해 내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실제 작업하기 전 시나리오를 쓴다. 지난 9월 전주 한옥마을 인근에 문을 연 로텐바움은 1967년을 살아가고 있는 27세의 프랑스 사진 작가가 사는 집이라고 가정했다. 구체적인 설정은 정교한 디테일을 이끈다. 로텐바움 책상 한쪽에 필름 사진 현상판이 놓인 것도 그래서다.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 인접한 웻에버는 미국 항구도시 볼티모어에 있을 법한 주택을 만들고자 했다. 한씨는 "웻에버 같은 경우 심해와 같은 푹 젖은, 축축한 집을 만들고 싶었다"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 대한 오마주로 만든 집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단순히 색다른 공간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궁극적인 목적은 낡은 집을 고쳐, 사람들을 유입하고, 낙후된 동네의 생기를 되찾는 것이다. 스스로도 본인들의 작업을 '독립 건축 프로젝트', '민간 재생 사업'이라고 명명한다. "도시재생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엄청 대단했던 건 아니에요. 원래 낙후된 곳에서 가게를 했었는데, 괜찮은 가게가 하나 들어오면 골목이 바뀌더라고요. 문제는 거리가 좋아지니까 가게 세가 비싸지고 디자인도 다들 금세 따라하는 거예요. 이럴 바에야 조금 느린 곳, 큰 자본이 없는 곳으로 가자는 생각이 들었죠."(한규철)



마침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던 손씨도 재미있겠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합세했다. 둘은 부산으로 내려가 오래된 건물을 찾아 나섰다. "사방에 새로운 건물들밖에 없잖아요. 굳이 새로 지을 필요가 없지 않나, 우리는 낡은 집을 고치자고 생각했죠." 그러다 광안리에서 좁고 기다란 3층짜리 건물을 발견하게 됐다. 주인 앞에서 "돈이 없어 월세는 많이 못 드리지만 저희가 괜찮게 고치면 사람들이 많이 올 거다"라고 배짱 좋게 설득한 뒤에 수리를 허락받았다.

둘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두 손수 고쳤다. 영화를 보며 평소 매력적으로 느꼈던 1960~1970년대 집처럼 만들기를 원했고 이에 어울리게 수전, 스위치, 휴지걸이 등 소품 하나하나 신경 써서 구했다. 경매를 받거나 오래된 타일 가게를 뒤져 찾아낸 보물들이다. 웻에버의 경우 폐교에서 구해 온 마룻바닥을 칠해서 다시 깔았다. "누구도 낡은 집에 이런 미친 짓은 안 할 거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달렸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웻에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이내 지역 '핫플'로 정착했다. 최근에는 웻에버가 있는 골목에 조그마한 가게 두 곳이 새로 생겼다. 동네 주민들도 "너희들 때문에 젊은 친구들이 정말 많이 온다"며 갈 때마다 반겨준다. 한씨는 "카페나 음식점 같은 상권은 대부분 사진을 찍고 그냥 돌아가는 데 반해, 숙소는 사람들이 동네에서 머물다 가기 때문에 도시재생에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경남 창원시의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도시재생을 주제로 강연도 했다. 손씨는 "외국에는 신시가지, 구시가지가 있고 그 시가지마다의 매력도 따로 있듯이, 우리도 새 건물을 우후죽순 만들기보다는 옛날 것을 살리는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둘의 도시재생 비법은 특별할 게 없다. "도시재생이 뭐 별걸까요? 그냥 그 도시를, 그 동네를 한 번이라도 찾아오게 만들면, 그게 도시재생이죠."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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