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를 취재하던 언론사 기자들에 대해 경찰이 "스토킹처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취재진은 15일 이 후보 자택 인근에서 대기하다 오후 1시 30분쯤 김씨가 병원으로 이동하자 사진을 찍고, 따라붙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취재진은 당시 '취재 차량' 표시가 없는 렌터카 4대를 이용했습니다. 김씨 측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취재진의 행위가 스토킹처벌법상의 '정당한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합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해당 언론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특히 모자와 망토로 몸을 가린 수행원을 김씨로 잘못 보도하는 바람에 "가짜뉴스 확산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차량 네 대, 기자 다섯 명 투입은 스토킹에 준하는 과잉취재"라며 취재를 스토킹에 비유했습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당시 취재진이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면서 불안감을 유발했다'는 측면에서 현행법상 스토킹으로 볼 여지는 있습니다. 법 조문을 있는 그대로 건조하게 해석하면 그렇습니다.
김씨 측이 신고했기 때문에 경찰은 신고자(김씨)와 피신고자(취재진)를 분리시킬 의무도 있습니다. 스토킹 범죄는 반복·심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법은 '정말 스토킹인지 아닌지' 법률 해석에 앞서 초기에 강한 경고 및 분리 조치를 하도록 합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취재진의 행위가 스토킹 범죄가 맞는지'에 관한 판단은 수사와 공판 단계에서 바뀔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취재진의 행위가 '정당한 행위' 였는지, '지속적, 반복적이었는지', '김씨가 느꼈던 감정을 공포심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을 살피게 됩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특히 취재 행위의 정당성을 따질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와 '피해자의 공포심' 사이 법익의 균형을 고려하겠죠. 즉 유력 대선 후보의 배우자가 다친 원인에 대해 국민의 관심이 쏟아지는 상황과 김씨의 피해를 저울질한다는 얘깁니다.
따라붙는 질문이 있습니다. '취재 행위나 일상 생활 속 분쟁도 스토킹으로 볼 수 있나'입니다. 대선 후보의 가족이 얽힌 사건이라 결과적으로 '취재행위도 스토킹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강한 인식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스토킹처벌법은 올해 4월 제정됐고 지난달 21일부터 시행돼 아직 참고할 만한 판례가 없습니다. 빨라야 내년 1, 2월쯤부터 법원의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외국에서는 취재 행위를 스토킹으로 의율(법규를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하는 일)하지 않습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취재행위를 스토킹으로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경찰은 스토킹 행위를 폭넓게 해석합니다. 경찰은 스토킹처벌법 시행을 앞둔 지난달 13일 김창룡 경찰청장 주재로 열렸던 경찰소통포럼에서 법의 주요 적용 대상과 업무절차를 공유했는데요.
여기서 ①층간소음 또는 흡연으로 인한 시비, ②학부모가 자녀의 생활기록부 관련 불만으로 교사에게 협박과 민원을 제기하는 일, ③채권·채무 관계에서 불거질 수 있는 행위까지 스토킹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번 사건도 경찰이 스토킹처벌법을 적극 해석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스토킹 범죄의 확대 해석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일보에 "법이 '가제트 만능 팔'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특히 "층간 소음이나 채권 추심처럼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사건들에 제한 없이 적용하다 보면 '법을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올 수 있다"고 경계했습니다.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된 것은 기존의 법이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승 위원의 말을 빌리면 "과잉 적용이 법 본래의 선한 목적을 가리거나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처럼 스토킹 행위의 목적을 '구애'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경찰이 예시로 든 행위들은 채권추심법, 협박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 적용 가능한 다른 법률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반론도 있습니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수사 기관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구애의 목적이 아니었다는 자의적 판단을 하면 정작 피해자가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 변호사는 "법 시행 초반에 스토킹이 범죄라는 인식을 강하게 줄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경찰이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법을 집행할 필요성이 있다는 얘깁니다.
다만 그 역시 "너무 생활 분쟁으로 확장할 경우 진짜 피해자에게 집중을 못하는 부작용도 간과할 수는 없다"며 초기 판례들을 분석한 후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여지를 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