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험생 아빠의 회고

입력
2021.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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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수능시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생각보다 조금 부족한 점수에 의기소침했다. 수학 두 문제 틀린 것이 유감이었다. 그래도 사교육 없이 홈스쿨링한 아이의 아빠로서 무난한 성적으로 대학에 합격한 것이 무척 고마웠다. 그런데 고대했던 대학합격 통지를 받은 날 저녁, 둘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일 년 더 준비해 수학 두 문제를 더 맞추고, 목표로 했던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나도 같이 고민했다. 오지선다형 수학 두 문제 정답을 찾는 데 소중한 일 년을 소비하는 것이 열여덟 꿈 많은 소녀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제 대학에서 자유롭게 책도 읽고 친구도 만들며 미래의 꿈을 키우는 게 맞지 않나. 결국 둘째는 합격한 그 대학에 입학했다.

그런데 나름 소신 선택한 전공이 자신에게 잘 맞지 않음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침 그 대학에는 매우 유연한 전공학과 변경, 이른바 전과 제도가 있었다. 자신에게 잘 맞는 전공으로 바꾸고 나니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벌써 4학년. 바로 사회에 나가는 것보다는 좀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지금은 환한 얼굴로 이를 준비하고 있다.

둘째의 5년 전 경험을 새삼 회고한 이유는 지난주 수능을 치르고 이제 곧 성적표를 받아볼 수험생과 학부모의 고민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그렇다. 수학 두 문제는 인생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소수점 자리로 전국단위 순위를 결정해야 하는 제도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성적이 가이드라인이 되어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게 하는 제도와 관행에 있다.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은 유보된 채 시험문제만 풀게 하는 고등학교 과정은 사실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다.

대학 입학은 새로운 출발점일 뿐 결코 종착점이 아니다. 월드컵 축구경기 준비에 힘을 쏟다가 체력이 다 소진되거나 큰 부상을 당해 정작 경기를 제대로 못 한다면 그는 진정한 프로가 아니다. 입신양명을 위해 대학 입학 자체가 중요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건 고등학교 졸업자 중 10%가 대학에 입학했던 50년 전 라떼의 일이다. 고등학교 졸업자 중 75%가 대학에 진학하는 현재 시점에 대학 졸업장의 가치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미 생각 있는 기업들은 블라인드 전형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한다. 이른바 SKY대학 졸업장이 대기업 입사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대학 졸업 후 20년이 되면 누구도 어느 대학 출신인가에 신경 쓰지 않는다.

대선후보들은 100% 수능, 1년에 2회 수능시험 등 다양한 대학입학정책 공약을 내놓았다. 사회의 지배적 화두인 공정성이 특히 강조된 대선공약에는 다음 세대의 행복에 대한 고민도, 미래사회의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 폐지와 국가교육위원회의 권한 강화, 대학 규제의 완화와 자율권 확대 공약 등은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대학은 거대 근대교육 조직의 관성에서 벗어나 교육의 수혜자 관점에서 미래지향적이고 개방적인 고등교육을 설계해야 한다. 열여덟 나이에 선택한 전공이 대학 입학 후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임을 알게 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따라서 입학 후 전공 조정이 허락되도록 하는 유연함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대학 전공학과들의 높은 칸막이다. 근대사회 초기에 만들어진 세부 전공 칸막이는 융합적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후기 근대사회 고등교육의 이상에 전혀 맞지 않는 모델이다. 21세기에 맞는 유연한 대학이 우리 대학생들에게 스스로 창의적으로 학습하고, 도전하고, 자신과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기쁨을 찾아 주기를 고대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