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4교시가 끝날 무렵인 오후 4시 30분쯤, 서울 용산고와 서울여고 앞에는 간간히 내리는 보슬비 속에 수험생을 기다리는 학부모와 지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첫 학생이 나오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수험생들이 속속 나오자 친구들이 달려가 화환을 걸어주는가 하면, 부모들이 그동안의 고생을 어루만지듯 손을 잡아주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수능이 대입 전형의 끝이 아닌지라 수험생 가족들은 긴장감을 놓진 못했다. 다른 자녀와 함께 수험생 자녀를 기다리던 노모(45)씨는 "내일부터 논술시험이라 학원에 보내야 한다"며 "전형이 다 끝나면 다음달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학부모 정모(54)씨는 "남은 대입 전형을 위해 친구들 모임은 자제시키고 있다"고 했고, 도미덕(46)씨는 "지쳤을 거 같아 오늘은 집에서 맛있는 것을 먹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반면 수시전형에 합격한 경우는 수능마저 끝났다는 홀가분함을 내비쳤다. 박모(47)씨는 "아이 친구는 이미 수시로 대입이 결정돼 엄마랑 성형외과에 상담하러 갔다더라"며 "우리 아이도 수시 입학이 확정돼 수능 끝나면 자동차 운전면허부터 따고 싶다고 했다"고 웃었다.
지난해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우려도 여전했다.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왔다는 학부모 이지연(50)씨는 "되도록 식사도 집에서 하도록 하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라고 주의시켜 왔다"며 "오늘은 가족들과 조촐히 외식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백신 접종이 진행된 터라 안도감도 느껴졌다. 안병리(51)씨는 "이미 한 차례 코로나19 국면에서 수능이 치러진 데다, 올해는 백신도 맞았으니 좀 안심이 된다"고 했다.
수험생들도 대부분 다음 전형을 준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도, 당장은 수능 부담에서 풀려났다는 기분에 들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해방감을 만끽하기보다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트레스 해소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재수생 조성빈(19)씨는 "면접 전형을 준비해야 하고 백신을 안 맞아서 (방역에)조심도 해야 한다"면서도 "수험표로 미용실에 가서 (할인된 가격에) 머리를 손질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현서(18)군은 "논술 전형을 준비하고 있는데 일단은 마음 편하게 놀 생각"이라며 "백신도 맞아서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하윤(19)씨는 "좋아하는 배우가 일한다고 해서 가고 싶었던 카페가 있는데 찾아가 보려 한다"며 웃었다. 송승지(18)양은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우선 디즈니플러스를 결제해 콘텐츠를 몰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코로나 영향으로 캠퍼스 생활이 어려워져 반수를 준비한 수험생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다가 반수를 결심했다는 황원준(19)씨는 "학교에 가본 일이 다섯 번도 안 되는 게 (반수 결심에) 영향이 컸다"며 "입시학원에 다니면서 보니까 성적 상위권 학생 중에 반수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황씨는 "백신도 맞았으니 오늘은 친구들과 밥 먹고 영화관에 가 보려 한다"고 했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조치 시행으로 지난해만큼 수능 직후 외출을 자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상인들은 "수능 특수는 옛말"이라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 장기화, 학령인구 감소, 수시비중 확대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그래서인지 음식점·영화관 등에서 수능 수험표를 제시하면 할인해주는 마케팅도 예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분위기였다.
이날 오후 7시쯤 용산구 아이파크몰에서는 친구 또는 가족과 함께 찾아온 수험생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친구와 영화관을 방문한 김모(18)양은 "2년 만에 영화 관람하러 왔다"며 "방금 다녀온 음식점은 행사가 없었는데, 수험표 할인으로 애플워치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쇼핑 온 이한빈(17)양은 "수험표 할인으로 면접에 필요한 신발을 샀다"며 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곳 상인들도 수능 효과를 여전히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 매니저 이모(28)씨는 "수능날이라고 손님이 딱히 많이 올 거라는 기대가 없어서 올해는 수험표 할인을 진행하지 않았는데, 실제로도 평소와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수험표 지참 시 20% 할인 행사를 하는 의류매장 점장 이모(28)씨는 "수험생은 한두 팀 정도 온 것 같다"며 "주말에는 좀더 많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긴 하다"고 말했다.
'젊음의 거리' 홍대 인근도 마찬가지였다. 위드 코로나로 유동인구는 늘어났지만 수능 특수를 기대할 만한 업종에서도 수험생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노래연습장을 운영하는 서정국(59)씨는 "다들 어디로 갔는지 작년처럼 수험생은 한 팀도 없다"고 한탄했다. 수험표 할인 행사를 하는 신발매장 직원 양모(22)씨도 수험생 손님은 한 명뿐이었다면서 "확진자가 많아져 그런지 생각보다 참여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