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에 들어간다면 상우(박해수)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18일 열린 글로벌 지식 나눔 플랫폼 'SBS D포럼'에서 "아무리 착한 선의를 끄집어 내려고 해도 기훈(이정재) 정도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은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능력 없는 기훈은 경쟁에 내몰리면서도 인간성을 지키려는 인물이고, 능력 있는 상우는 반대로 인간성을 잃어 가는 캐릭터다.
황 감독이 '오징어 게임'에 참여했다면, 어디까지 살아남았을까.
그는 "생존 능력이 있는 편"이라며 "징검다리 게임쯤에서 탈락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임은 극 후반, 다섯 번째 미션으로 등장한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의 첫 4주(28일) 총 시청시간은 16억5,045만 시간으로 집계됐다. 햇수로 따지면 무려 18만8,000년에 이르는 기간으로, 넷플릭스 역사상 영화와 TV 부문 통틀어 최다 시청 시간이다. '오징어 게임'은 세계적 신드롬을 낳으며 화제의 중심에 섰지만, 폭력성에 대한 비판도 받고 있다.
황 감독은 "작품 안에 나오는 폭력들이 리얼해 보이지만, 굉장히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폭력"이라며 "지금 이 사회와 그 안의 경쟁으로 막다른 길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상징한다"고 답했다. 더불어 "총과 죽음은 경쟁에서의 낙오를 은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 공개 후 해외에 사는 친구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고 한다.
편지엔 친구의 10세, 12세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을 본 뒤 "왜 사람들이 죽어야 돼?", "저 사람들은 왜 저런 게임을 하는 거야?" 등의 질문을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 감독에게 이메일을 보낸 친구의 말은 이랬다. "아이들과 매일 등하굣길에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며, 빚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등 작품의 의미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참 좋은 수업이 됐다." 이를 두고 황 감독은 "이미 어떤 경로로든 아이가 '오징어 게임'을 봤다면 부모님이 대화를 통해 작품에서 '자극적인 폭력'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메시지를 전해 순화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외국인 반응으로는 권총 모양의 라이터를 딸에 선물한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은 사례를 꼽았다.
황 감독은 "딸아이가 권총 모양 라이터를 꺼내는 순간, 미국같이 총기가 허가된 국가에서 다들 화들짝 놀랐다"며 "’어떻게 (진짜 총인지 아닌지) 확인도 안 하고 아빠가 딸에게 총을 선물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황 감독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 공정성, 기후 문제, 세대 갈등, 성 갈등, 계층 갈등, 고령 사회 문제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들이 너무나 많다"며 "다음 작품을 하게 되면 '고령화 문제'와 '세대 갈등'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