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환자, 직원, 간병인 30여 명이 감염됐는데, 이송을 못 해 남아 계신 분만 20명이에요.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중이란 이유로 나머지 분들에 대한 부스터샷(추가접종)도 못하고 있어요.”
18일 수도권의 한 요양병원 원장 A씨의 하소연이다. 코로나19가 휩쓴 지난 2년간 확진자 없이 버텨 냈는데, 지난달 처음 코로나19 환자가 나오더니 확진자가 계속 불어나기 시작했다. A원장은 “방역 수칙상 요양병원 종사자들은 백신 맞고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도 접촉자라는 이유로 자가격리 면제가 안 된다"며 "안 그래도 구하기 힘든 간병인을 더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 3차 대유행 당시 숱한 사망자를 쏟아냈던 요양시설의 코호트 격리 악몽이 스멀스멀 되살아나고 있다. 3차 대유행의 악몽 때문에 올해 백신이 도입되면서 요양병원과 시설에 접종이 가장 먼저 이뤄졌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중심으로 5월 정도까지 2차 접종을 다 마무리했는데,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백신 효과가 가장 먼저 떨어져 돌파감염이 밀어닥친 셈이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전날 기준 코호트 격리가 진행 중인 요양병원은 34곳, 요양시설은 22곳이다. 지난 7월 4차 대유행 이후 요양병원·시설의 집단감염 건수는 △8월 28건 △9월 35건 △10월 58건으로 크게 늘었다. 확진자 수도 그에 맞춰 291명, 307명에서 988명으로 폭증했다.
하지만 요양병원·시설에서 나온 위중한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 전담요양병원은 서울, 경기, 울산, 광주 단 4곳뿐이다. 3차 대유행 당시 11곳을 지정했으나 모두 줄여버린 탓이다. 서울의 감염병전담요양병원인 미소들요양병원의 윤영복 원장은 “약 일주일 전부터 병상가동률이 80% 이상 차오르면서 더 이상 환자를 받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부랴부랴 지난 12일 서울 2곳, 인천·경기 각 1곳 등 감염병전담요양병원 4곳 405개 병상을 추가 지정했다. 준비 기간을 거치면 다음 주부터 순차적으로 운영에 들어간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감염병전담요양병원 지정도 한참 늦었지만, 이곳은 중환자를 볼 수 없는 곳이라 결국 중환자 병상 확보와 전원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방역당국은 지난 10일부터 요양병원·시설에 대한 백신 추가접종에 나섰다. 추가접종 간격도 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됐지만 이 또한 한 박자 늦은 뒷북 대책이다. 기저질환자가 많아 백신 접종에 대해 환자나 보호자의 불안함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빨리 결정해서 미리미리 설득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거기다 현재 방역지침상 코호트 격리가 이뤄지면 나머지 환자 등에 대한 추가접종이 이뤄지지 않는다. 잠복기를 감안해 확진자와 접촉한 이들은 곧바로 추가접종하는 것보다는 좀 더 기다려보라는 취지다. 하지만 A원장은 "환자나 보호자 동의 아래 PCR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면 추가접종을 빨리 하는 게 낫다고 해봐야 확진자가 있다는 이유로 백신 자체를 주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 요양병원·시설엔 추가접종이 시급하다"며 "병원 측에다 맡길 게 아니라 방역당국이 버스를 개조한 ‘백신 스테이션’을 만들어 요양병원마다 돌아다니면서라도 백신을 맞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