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4, 2·4 부동산대책을 통해 주택 공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공공택지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 곳곳에서 사업백지화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배경엔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사업 방식, 낮은 보상가로 인한 재산권 침해 문제가 거론되지만, 정부가 공급 계획만 발표할 게 아니라 답보하고 있는 기존 주택 공급 사업부터 마무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울산시 등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 4월 29일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 선바위지구 183만㎡에 2030년까지 1만5,000가구를 공급하는 내용의 ‘2·4 주택공급 대책’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지역산업 종사자를 위한 주거단지를 조성하고, 자족용지를 통해 산·학·연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개발 계획을 철회하거나, 불가하다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보상안 마련을 요구하며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선바위지구 대책위원회는 “울산의 주택보급률은 110%를 넘고, 5년 내에 약 10만 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이 공급될 예정인데 또 선바위지구를 개발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2019년 현재 울산은 43만7,094가구에 주택 수는 48만7,237호에 이른다. 주택공급률 111.5%로, 전국 평균(104.8%)을 훨씬 웃돈다. 7대 도시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수치다.
대책위는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입암들의 논은 물을 가두는 저수지 역할과 땅 밑으로 물을 내려보내는 통로 역할을 하는데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면 태화강 수위 조절 능력에 영향을 끼쳐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이들은 일방적인 추진 절차도 문제 삼고 있다. 이동범 대책위원장은 “공공복리라는 미명하에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개발방식에 분노한다”며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50년 동안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은 것도 모자로 강제수용으로 토지를 헐값에 강탈해 가는 것이 정당한 공권력 행사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갈등은 울산뿐 아니라 남양주 왕숙,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 3기 신도시를 포함해 전국에서 불거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홍기원 의원실에 제출한 ‘시도별 미착공 공공주택 현황’에 따르면 사업 승인을 받고도 주민 반발 등으로 착공하지 못한 공공주택은 전국적으로 10만5,200가구에 이른다. 이는 올 초 정부가 2.4공급대책에서 밝힌 신규택지 공급물량(26만3,000가구)의 40%에 해당하는 수치다. 전체 면적은 서울 여의도 1.5배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발표한 주택공급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경우 다시 부동산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는 만큼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사업지 선정, 토지 보상가 등 모든 과정에서 주민과의 간극을 좁히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은 “토지소유자들은 개발이 됐을 때 미래 가치를 생각하고, 공공에서는 현 시세만을 따지기에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공공개발을 하더라도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지자체장과 협의를 통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발제한구역을 수용해서 공공택지로 개발할 경우 수십 년간 재산권 침해를 받았던 토지인 점을 고려해, 소유자에게 적정 수준의 보상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