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국면에서 정치인은 말실수로 종종 치명타를 입는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6070대 이상 어르신들은 투표하지 않고 집에서 쉬셔도 괜찮다”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 비하 발언이 대표적이다. 역대 대선에서도 후보들이 말실수로 곤욕을 치르고 잘못 뱉은 말 한마디가 판도를 뒤흔들어 팽팽한 균형을 깨기도 했다. 대부분 정치행위가 말로 이뤄지는 풍토에서 정치인의 성패는 입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번 대선 국면에서도 대선 후보들이 이런저런 말실수로 도마에 올랐다. 정치신인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유독 심했다. 120시간 노동과 부정식품 발언 등 등판 초기 ‘1일 1실언’이 회자될 정도였다. 정치판에 익숙해진 탓인지 윤 후보의 말실수가 줄어드는 대신 최근에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실수가 두드러진다. 캠프에서 혹시 모를 설화에 대비해 인터뷰 자제령까지 내렸지만 “음주운전 경력자보다 초보운전이 더 위험하다” “(오피스 누나라는) 제목이 확 끄는데” 등의 아슬아슬한 말이 후보 입에서 흘러 나왔다.
□ 최근에는 “솔직히 부산 재미없다”는 이 후보의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야당에서 지역비하 발언이라고 발끈하자 여당에서는 “청년이 살고 싶은 부산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라며 방어에 나섰다. 이 후보 발언 동영상을 보면 “부산 재미없잖아, 솔직히”라고 운을 뗀 뒤 곧바로 “재미있긴 한데, 강남 같지는 않은 측면이 있다”고 서둘러 수습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실언성 발언이기는 하지만 부산 지역 전체를 폄하할 의도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
□ 영미 정치에서도 정치인의 말실수는 정치권의 주요 이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자서전 ‘약속의 땅’에서 ‘정치인의 무식이나 부주의, 악의, 거짓에서 비롯된 잘못된 문구’를 정치적 말실수(gaffe)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상대방 공격을 위한 말꼬리 잡기의 의도를 경계했다. 대선 후보들이 항상 말조심을 해야겠지만 상대방의 말실수를 파고들어 거칠게 공격하는 행태는 보기 안쓰럽다. 유권자가 말실수와 말꼬리잡기를 구분하지 못할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