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또는 매트릭스 ②한국의 언어는 무엇인가?

입력
2021.11.18 20:00
25면

슬프지만, 이번 생에 나는 오빠가 될 수 없다. 직계 가족은 물론 먼 친척 중에서도 손아래 여동생이 없어서가 아니다. 정확히 말해 나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된 영어 단어인 oppa가 될 수 없다. 표제어 oppa의 두 번째 의미는 다음과 같다. '매력적인 한국 남자, 특히 유명하거나 인기 있는 배우 또는 가수.'

지난 9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는 한국어에서 기원한 영어 단어 26개가 새롭게 등재되었다. 누군가는 이 소식을 듣고 대박(daebak)이라고 소리치며 치맥(chimaek)으로 먹방(mukbang)을 하고 싶어 하거나, 한류 파이팅(hallyu fighting)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각종 미디어와 SNS에서는 한류의 영향으로 거침없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유튜브 공간에서 한국어는 신통방통한 신비의 언어이자, 가장 우월한 언어처럼 묘사된다.

나만 괴로울 수 없으므로, 그 영상들의 제목을 몇 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어는 왜 이렇게 만능이에요?) 외국인들이 말하는 한국어에서만 가능한 말들?![외국인 반응]> 이 동영상 제목만 보면 한국어는 다른 외국어들이 다룰 수 없는 것들도 표현하는 궁극의 언어다. 자, 다음. <"한국인들은 말로 절대 못 이겨!" 외국인이 한국에서 감수성이 늘어난 이유 '해외반응'> 한국어는 배우면 없던 감수성이 생겨나는 언어다. 요즘 내가 감수성이 메말랐는데 한국어를 다시 공부해 봐야겠다. <한글패치된 외국인 미녀들이 세계 공용어가 되고 있는 한국말들을 보고 충격받은 이유>. 그랬구나.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었다는 걸 나만 몰랐구나. 급기야 다음 생을 기약하는 선언도 나온다. <"다시 태어나도 난 한국어를 택하겠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놀라운 이유-"한국어를 감히 일본어 중국어와 비교하지 마!">

이러한 동영상들의 제목만을 모아 냄비에 넣고 졸이고 졸이면 한국어는 지구 최고의 언어이자, 배우기만 하면 최고의 인간이 될 수 있는 언어라는 메시지만 남을 것이다. 언어 신비주의를 넘어서 인종주의 냄새까지 풍기는 이러한 동영상들은 높은 조회수를 자랑하는데, 이런 높은 인기의 비결 중 하나는 서구 언어를 모어로 하는 백인 출연자들의 인증이다. 다시 말해 이런 동영상에서 말하는 외국인의 범주에는 비서구권 출신의 외국인들이 포함되지 않는다.(감히, 일본어, 중국어와 비교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가.) 서구권 백인들의 인증을 통해 한국어, 그리고 그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은 서구 제국의 백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

그래서 인증이 중요하다. 인증이 없다면 메시지는 완성될 수 없다. 9월에 있었던 옥스퍼드 영어 사전 등재를 둘러싼 한국 언론의 반응도 같은 사례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 측이 한국 언론에 등재 소식을 알렸을 때는 반응이 없다가, 해외 유력 매체가 주목하자 그제야 한국 언론들이 해당 소식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시사인 739호 보도) 관련하여 한 일간지에서는 국립국어원도 아닌 옥스퍼드 사전이 '파이팅'을 한국어로 '공인'했다며 드디어 '파이팅'이 한국어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쓰는 한국어가 진짜 한국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아닌 대영제국 사전의 인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셈이니 말이다.

세계 또는 서구에서 인정받았다는 흥분과 항상 쌍으로 나오는 반응이 있다. 바로 국어 매트릭스의 작동, 즉 순수한 한국어의 강조이다. 2018년 한글날 즈음, 한 신문에 '한글의 두 모습…방탄소년단은 세계화, 안방에선 황폐화'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한글과 한국어의 개념을 섞어 놓은 그 사설의 내용은 이렇다. 방탄소년단의 활약으로 한국어가 해외에서 대접받고 있는 반면, 안방에서는 정체불명의 신조어와 줄임말, 은어로 인해 한글의 황폐화와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고쿠고(國語), 즉 일본어가 일본을 넘어서 일본 제국의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표준화, 규범화가 되어야 한다는 우에다 가즈토시와 그의 제자 호시나의 생각과도 유사하다.)

한국어 세계화와 연동된 이러한 국어 매트릭스의 작동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기도 하다. 눈치챘겠지만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된 '치맥', '먹방', '대박'과 같은 단어는 위의 일간지 사설에서 우리말을 황폐화시킨다고 비판한 '신조어, 줄임말, 은어'와 일치한다. 안에서는 온전한 국어로 인정받지 못하는 말들이 밖에서 한국어로 인정받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세계가 인정하고 있으니 한국어의 순수성을 지키자는 주문은 여기저기서 계속된다. 한국어의 세계화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영토, 하나의 민족이라는 국어 매트릭스를 강화하는 역설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국어 세계화는 한국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고의 회로를 따르게 만든다. 한국어는 잘나간다. 잘나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이유란 한국어가 '과학적이고도 신비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학적이고 신비한 언어는 규격화되어야 하며 이것저것 섞인 것이 아닌 순수한 것이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무의식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전 세계인들이 문화상품 한국어를 사는데, 하자가 있는 물건을 팔면 쓰나. 순정품만 팔아야지.'

이런 현상을 두고 한국어 교육학자 강남욱은 한국인들이 국제적으로 한국어가 언어 다양성의 측면에서 마땅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반응하는 반면, 한국 사회 내부의 언어적 다양성에 대해서는 경직된 배타성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 내부의 언어적 다양성이라니? 그런 게 있었나? 하나의 영토,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라는 국어 매트릭스 안에서 사는 이들에게 이는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소리만큼 황당하겠지만, 매트릭스를 벗어나면 언어적 다양성이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사는 동네를 지나다 보면 한국어와 함께 베트남어, 러시아어 광고가 같이 붙어 있는 가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많은 지역의 지자체에서는 정책 안내문을 다국어로 제작해 홍보한다. 전북의 지역방송사 뉴스에는 중국어와 베트남어 자막이 깔린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경남 김해의 초등학교 교사 김준성은 한국어가 서툴러서 온라인 수업을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을 위해 동영상에 러시아어 자막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더빙스쿨'이라는 시민사회 운동으로 발전한다.

국어 매트릭스는 이러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아니 이러한 현실을 눈앞에서 지워버린다. 국어는 단순한 규범의 체계가 아니라 강력하고 거대한 정치적 기계이기 때문이다. 이 기계는 국민으로 이루어진 근대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에는 효율적으로 작동했지만, 수많은 배경의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된 지금은 오작동을 하고 있다. 이 기계는 이미 다인종·다문화 사회가 된 한국 사회를 향해 이런 말만 무한 반복한다. '한국에 왔으니 이제 한국어를 하시오.'

한 인간의 정체성에서 그의 모어를 빼놓을 수 있는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의 정체성에서 한국어를 하루아침에 깔끔하게 제거하고, 외국어를 당신의 정체성에 다시 이식할 수 있는가? 그러나 국어라는 매트릭스는 그것을 요구한다. 한국 사회에서 다인종, 다문화를 이야기하지만 '다언어'가 쏙 빠지는 이유다.

지금 이 시대에 국어 매트릭스가 만들어내는 가장 큰 부작용은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는 많은 구성원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민족에 속하는 국민'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국어는 '한국 사회'는 곧 '국가'라는 상상 속에 머물게 하고, '국민'의 속성을 갖추지 못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있지만 없는' 사람들로 만든다.

마찬가지로 국어 교육은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국민'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공동체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는 '시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한국어 세계화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예산을 지원하지만 한국어를 못해 국민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국가가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다. 그렇게 교사 김준성은 자비를 털어가며 더빙스쿨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국어 매트릭스에 갇혀서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지요. 한국에 왔으니 한국어를 해야지요. 한국어를 못해서 도태되면 자기 책임이지요.'라는 말만 반복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그는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먹었고, 그 마음은 그를 국어 매트릭스의 밖으로 나오게 했다.

한국어의 세계화를 자랑스러워하고 열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국어라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지워진 우리 공동체의 일원을 찾을 때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의 언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언어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백승주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