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 논바닥에 모아놓고 죽여" 참전군인 법정 고백

입력
2021.11.1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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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군인, 정찰 중 시신 무더기 목격
“중대장이 목 긋는 시늉을 했다더라”
'마을 학살' 피해자, 한국 상대로 소송
증언 계기 묻자 "전쟁 없는 세상 돼야"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이 법정에서 한국군이 당시 어린이와 부녀자, 노인 등 다수의 민간인으로 보이는 현지 마을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증언했다.

해병대 청룡부대 출신의 류모(75)씨는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재판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이 살해당했다며 베트남인 응우옌티탄(61·여)씨가 한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4번째 변론기일이었다. 파월 참전 군인이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법정에서 증언하기는 처음으로 알려졌다.

류씨는 1967년 해병대에 입대해, 이듬해 2월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 지역에서 주둔할 당시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어느 날 본인이 속한 2소대 대원들과 부대 근처 도로를 정찰하는데, 민가 근처에서 베트남인 여럿이 길을 막은 채 항의하듯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그 옆에 민간인으로 보이는 이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걸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도로를 막고 눈에 핏발을 세우면서 소리 지르고, 악을 쓰고 있기에 깜짝 놀랐다”며 “그 옆에 보니 거적때기 위에 수많은 시체들이 있었고, 그래서 뭔가 큰일이 있었구나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류씨는 “(발견 당시엔) 100구는 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70여 구라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류씨와 소대원들이 이후 부대로 복귀하자 “어떻게 된 거냐” “누가 죽인 것이냐”라며 살해 사건이 화제가 됐고, 그제야 학살을 벌인 다른 소대 대원들로부터 사건 전말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다른 소대 애들이 (민간인을) 죽인 현장, 장면들을 무용담처럼 얘기하더라. 아무 죄의식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현지 마을) 수색 중에 끌려 나온 어린이들, 부녀자들, 노인들. 이 사람들을 어디에 널려놓을 수 없으니 논바닥 한쪽에 모아뒀던 것”이라며 “(수색) 작전이 끝나서 중대원들이 ‘어떻게 할까요’ 했더니 중대장이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더라”라고 밝혔다. 다만 중대장 지시를 받고 학살한 소대가 1소대인지, 3소대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류씨는 최근에야 소속 부대가 학살을 자행한 곳이 ‘베트남 퐁니 마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증언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후대들에게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내가 보고 행동한 것들을 통해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고 말했다.

원고 측에 따르면 한국군 청룡부대 제1대대 제1중대 소속 군인들은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에서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 74명을 학살했다. 사건 당시 8세였던 응우옌티탄씨는 총격으로 복부에 부상을 당했고 가족들 역시 죽거나 다쳤다. 그는 2015년부터 한국에서 이 같은 피해 사실을 알리고, 한국 정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해오고 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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