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채택된 ‘글래스고 기후 조약’은 공허한 말잔치였나. 세계 각국이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지구촌 곳곳에서 석탄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겨울이 되면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한 탓이다. 미국에선 석탄 가격이 12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고, 호주 중국 인도는 영국 글래스고에서 돌아오자마자 석탄발전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200개 가까운 나라가 합의한 ‘석탄발전 감축’ 약속은 벌써 뒷전으로 밀려 버렸다.
1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신용평가업체 S&P글로벌 자료를 인용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센트럴 애팔래치아 석탄시장 현물 가격이 톤당 89.75달러로 1주일 전보다 10달러 이상 올랐다”고 보도했다. 석탄 수출 증가로 내수 시장 가격이 급등한 2009년 이후 최고가다. FT는 “계절적으로 전기 수요가 늘어난 데다 올해 천연가스 값이 두 배 오르면서 석탄 사용량도 급증해 가격 상승을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미 에너지정보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미국 석탄발전 가동률은 지난해보다 무려 22%나 증가했다.
생산 단가가 올라가면 소비자 요금도 뛸 수밖에 없다. 미국 전기회사 듀크에너지와 엑셀에너지는 올겨울 미국의 가구당 월 난방비가 11달러가량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전기 요금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도 우려된다. 상대적으로 값싼 석탄 의존도가 더 높아질 게 뻔하다는 얘기다. 지금도 전 세계 전력 34%는 석탄발전으로 생산되고 있다.
심지어 호주는 글래스고 기후 조약 서명 사실조차 까먹은 듯하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향후 수십 년간 호주 석탄 산업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래스고 조약은 석탄발전 종말 선고”라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평가에 동의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모리슨 총리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도 “안보 이익이든 경제적 이익이든, 국익을 위해서라면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호주는 세계 2위 석탄 수출국이자, 5위 생산국이다.
글래스고에서 석탄발전 ‘중단’을 ‘감축’으로 후퇴시키는 데 앞장선 인도와 중국도 ‘석탄 예찬론’을 부르짖고 있다. COP26 폐막일인 13일, 양웨이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경제위원회 위원은 “9월 정전 사태는 우리가 에너지 위기에 충분히 대비돼 있지 않다는 걸 보여 준다”며 “재생에너지 보완을 위해서라도 석탄발전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중국의 석탄발전 비중은 전체 전기 생산량의 62%였고, 인도에선 72%에 달했다. 인도 정부는 현재 208GW(기가와트)인 석탄발전 용량이 2030년엔 267GW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미국 비정부조직 글로벌에너지모니터는 “지난해 전 세계 석탄발전 비중이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했다”며 “중국과 인도에서 신규 발전 시설이 늘어난 영향”이라고 짚었다. 블룸버그통신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증가한 석탄발전 용량은 중국이 444.2GW, 인도가 113.7GW로, 두 나라가 전체 95%를 점했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최근엔 에너지 공급난에 대비해 하루 석탄 생산량을 각각 1,200만 톤, 200만 톤으로 늘리기도 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기후변화연구소 매튜 잉글랜드 교수는 “석탄을 버리지 않고는 절대로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