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요"...DNA 통한 가족찾기는 결국 무산

입력
2021.11.17 04:30
8면
<'로라 루스의 엄마 찾기' 열흘 동행 취재 ②>
"친부모가 나를 찾지 않았을까" 경찰 방문  
입양 전 돌봐준 위탁모와 기적처럼 상봉
어린 날 단편들 찾아… "뭔가 매듭지어져"

편집자주

친부모를 찾고자 하는 해외 한인 입양인 중 1%만 소원을 이룬다. 출생 과정의 기록을 지우고 입양을 보냈던 잘못된 관행 탓이다. 유전자 정보로 찾는 방법이 있지만 부모가 등록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생후 5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된 로라 루스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36년 만에 엄마 찾기에 나선 루스씨가 한국에서 보낸 10여 일을 동행 취재했다.


“친부모를 찾을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한인 입양인 로라 루스(36)씨는 담당 경찰관의 말에 그만 맥이 풀리고 말았다. 유전자(DNA) 조회를 위해 이달 3일 찾은 인천 부평경찰서에서 “가족 찾기 데이터베이스에 루스씨와 이어지는 DNA 정보는 없었다”라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36년 전 이름도 주소도 남기지 않은 채 돌아섰던 엄마가 이제라도 아이를 찾고 싶어 DNA 등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어떤 결말이어도 괜찮아’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다잡았건만 무너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언제고 친부모가 경찰서를 찾길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걸까. 루스씨는 동행한 기자에게 “하루만 쉬고 싶다”며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엄마를 찾고 싶었던 루스씨를 마지막까지 주저하게 만든 건 “엄마가 나로 인해 곤란해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답이 없어 보이는 문제를 외면해온 시간이 길었다. 용기를 내서 찾아온 한국에서 엄마의 부재를 확인하고서야 어렴풋이 그 답을 찾은 듯했다. '엄마가 나를 찾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오랜 응어리가 풀려 시원해져야 할 것 같은 가슴은 그러나 외려 더 먹먹해졌다.


“나를 기억할 유일한 사람” 36년 만에 만난 위탁모

흔들리는 루스씨를 붙잡아준 건 '또 다른 엄마' 위탁모를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경찰이 어렵게 찾아낸 한옥희(79)씨는 루스씨를 입양 보내기 전까지 5개월가량 맡아 키웠다. '1985년 서울에 내가 살고 있었음을 기억해줄, 어쩌면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루스씨는 12일 충남 홍성군에 사는 한씨를 한달음에 찾아갔다.

여든을 앞둔 한씨는 거동이 불편했지만 루스씨를 한껏 안아주며 맞았다. “다시 뵙게 돼 반갑다”고 인사하는 루스씨를, 한씨는 “다 예쁘네, 미운 데가 하나 없네”라며 한참 바라보다가 “손이 참 차다”며 진한 붉은색 이불을 깔아 따뜻하게 덥힌 전기장판 위로 이끌었다.

루스씨는 묻고 싶은 게 많아 주전부리로 나온 사과, 전병, 강정에 손을 댈 겨를이 없어 보였다. 한씨는 그런 루스씨 손에 연신 먹을 것을 쥐여줬다. 하지만 ‘맡아 길렀던 입양아들을 기억하느냐’는 질문에는 ‘이호진’ ‘김다감’ 등 몇몇 이름을 떠올렸을 뿐 ‘신민경’(루스씨 한국명)은 끝내 기억하지 못했다.

그즈음 7년 정도 위탁모로 해외 입양아를 돌봤던 한씨는 자신을 거쳐간 아이가 정확히 몇 명인지 기억하지 못했지만, 김포공항에서 아이들을 떠나 보내던 순간만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한씨가 루스씨를 위탁아동으로 집에 들였을 때 열여섯 살이던 한씨의 딸은 “어머니가 요즘 깜빡깜빡 하신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루스씨는 잊지 않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한씨 기억 속에 돌도 안 지났던 어린 루스씨의 모습은 지워졌지만, 다행히 1985년 8월 미국으로 떠나보내기 전 루스씨가 어떤 아기인지를 한씨가 설명한 기록이 입양 서류에 남았다. 거기엔 “밤 10시부터 자정까지는 울고 안아주길 바라는 편이며, 서너 시쯤 깨면 우유를 먹고 곧 잠든다” “목욕을 위해 물에 넣으면 심하게 울지만, 이내 조용해진다” “기저귀를 갈면 스스로 다리를 뻗어 기지개를 켠다” “울음소리가 크다” “성격이 급한 편이다” 등의 내용이 세세히 적혀 있었다.

한씨는 "밤에 자지 않고 울어 돌보기 유독 힘들던 아이들만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입양 전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바람이 이뤄졌다면 더 좋았겠지만, 괜찮다. 루스씨는 한씨에게 “나를 기억 못 해서 다행”이라며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한씨는 루스씨가 입양 가던 때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연신 “예쁘다”고 말했다. 루스씨가 결혼을 했다며 남편의 사진을 보여주자 “잘생겼다”며 환하게 웃었다. 한씨는 딸에게 자신의 사진을 가져다 달라더니 루스씨에게 “가져가라”고 건넸다.

두 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이 끝날 때쯤 한씨는 자신이 손수 만든 박달나무 도마를 선물로 줬다. "아주 단단한 도마"라고, “내가 몇십 년을 써봤는데 박달나무만큼 튼튼한 게 없다”라고 했다. 그는 “이제 손이 따뜻해졌네”라며 한참을 잡고 있던 루스씨의 손을 놓아줬다.

요즘은 거동이 불편해 현관 밖을 잘 나가지 않는다는 한씨지만, 이날은 3층 계단을 걸어 루스씨를 배웅했다. 구부정한 허리로 철제 난간을 잡고 계단을 하나씩 천천히 내려가는 한씨 뒤를 루스씨가 바짝 뒤따랐다. 36년 전 핏덩어리였던 자신을 키워준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꽉 채웠다는 소중한 사실

루스씨는 한씨와 대화하면서 자신이 열 달을 꽉 채우고 몸무게 3.6㎏으로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엄마는 어쩌면 마지막까지 루스씨를 지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루스씨는 “내가 어떻게 버려졌느냐도 중요하지만, 엄마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랐고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소중하다”며 “무언가 매듭이 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친엄마에게 하고픈 말을 청하자 루스씨는 “한국에 오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서 미안하다”며 입을 뗐다. 그는 “한국에 있는 내 가족들이 나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더 걱정했다. 지난 36년은 답이 없는 질문들을 그냥 제쳐뒀던 시간이었다”면서 “하지만 이젠 내 상처들을 바로 바라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루스씨가 말했다. “엄마 늦게 와서 미안해요. 엄마가 나를 만나길 원치 않는다 해도 원망하지 않아요. 제가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제 삶을 채워주는 가족과 친구가 곁에 있어요. 저는 괜찮아요.”

원다라 기자
홍성=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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