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제안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방역지원금) 추가 지급을 두고 머리를 앓고 있다. 찬성하자니 청와대가 대선에 앞서 '이재명표 예산' 지원에 나섰다는 이유로 '정치 중립성' 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크고, 반대하자니 당정 대립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충돌하는 모양새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크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6일 "청와대도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됐다는 점에서 방역지원금 추가 편성은 힘들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최근 "재정 여력이 없다"며 방역지원금 추가 지급에 반대 입장을 편 것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1인당 20만 원 수준의 지원을 위해 내년도 예산에 약 10조 원 규모의 방역지원금을 새로 편성하자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추진하는 방역지원금을 '매표(買票) 행위'로 규정하며 반대하고 있다. 청와대 입장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예산을 원만하게 통과시키려면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방역지원금 지급에 찬성하기는 쉽지 않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강행 처리는 가능하지만, 그간 강조해온 '정치 중립' 원칙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추가 확보된 세수를 활용해 국민의 어려움을 추가로 덜어드리면서 일부를 국가채무 상환에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방역지원금 지급은 문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구상에는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방역지원금 지급에 반대하는 여론이 60~70% 수준"이라며 "돈을 쓰고도 욕을 먹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 후보와 당에서 추진하는 방역지원금을 '결사 반대'하는 건 아니다. 여당 대선후보의 핵심공약을 좌절시킬 경우 당청 갈등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 후보와 민주당은 대장동 의혹과 국민의힘의 컨벤션 효과에 밀려 지지율 반등의 계기를 찾지 못하는 상황을 탈피해야 한다. 당내에서 "청와대가 여당 후보를 돕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새어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나서지 않는 가운데 당정갈등의 수위는 연일 고조되고 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YTN 라디오에서 기획재정부가 올해 세수 초과액을 과소 추계한 점을 지적하면서 "의도가 있었다면 국정조사라도 해야 할 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권여당이 정부를 상대로 국정조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당정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비판의 대상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서 문 대통령으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정갈등을 방치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청와대는 "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부터 하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년 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넘겼다"며 "당에서 홍남기 부총리를 설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회에서 여야 간 얘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국회에서 합의한다면 정부와 청와대는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여야 합의가 무산된다면 방역지원금 지급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